돈의 흐름을 바로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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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헌재<한국신용평가(주) 사장>
부동산투기억제·물가안정대책등 정부의 강력한 의지표명에도 불구하고 물가 불안심리는 여전하다. 무역흑자와 선거자금으로 많은 돈이 풀렸다는 것, 그것 외에도 「돈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이 크게 한몫 거두는 것 같다.
요즈음 돈의 흐름을 보게되면 정상이 아니다. 많이 잘못된 느낌이다. 흑자홍수속에 돈은 넘쳐 흐르는데 정작 돈이 필요한 기업들은 자금부족으로 울상이다.
부도방지로 동분서주한다. 반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투기차익을 노린 떼돈들이 몰려다닌다. 고급백화점과 호화 음식점에는 그 씀씀이가 정말로 헤플 정도다.
돈이 엉eND한데 편재되어있어 정상적인 금융 시장으로는 좀처렴 흘러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은행은 속수무책. 뾰족한 환수방법도 없고, 부문간 자금 과부족을 조절할 능력은 더욱 없다. 그나마 은행대출은 부실대출 아니면 대기업편중 대출로 물려있어 타기업들은 가용자금마련에 엄두도 못낸다. 여기에다 중앙은행은 통화환수차 채권을 떠안기고 있어 자금흐름의 병목현상만을 부채질, 특히 중소생산업체의 자금사정은 악화일로에 들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치수가 위정자의 가장 큰 관심사이긴 마찬가지로 평소에 치수를 소홀히 하면 가뭄과 홍수의 피해를 번갈아 겪게된다.
국민경제에 있어서 「돈의 흐름을 다스리는 일」은 치수만큼이나 중요하다. 돈의 흐름이 왜곡된데서 오는 폐해는 막대하다. 돈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흐르지 못하고 범람하여 각종의 투기행위에 몰리게되면 저지대에 사는 소위 보통사람들은 큰 고통을 받게된다.
값비싼 댓가의 노사분규끝에 얻어진 임금인상이 헛수고가 되어버리고 수년간 쌓아온 내집마련의 꿈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만다.
무엇보다도 돈의 흐름을 근원적으로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둑을 쌓아 범람을 막고, 수로를 내어 흐름을 원활히 하며, 보를 막아 물을 가두는 치수의 이치로 돈의 유통경로를 바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물가안정은 물론 분배의 균형도 기대할수 없다. 비록 단기적으로 벅차고, 현실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하더라도 순리로써 국가백년지대계의 기초를 닦을 일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돈은 이익을 찾아 흐르게 마련이다. 부동산투기만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전에 정부스스로 올바른 정책을 써왔는지 반성해야할 것이다. 경기부양이다, 세인확보다, 선거선심이다하여 오히려 투기를 조장치는 않았는지, 일관성없는 투기억제책이 그나마 실기해서 애꿎은 피해자만 늘려놓진 않았는지 말이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다 잘살려는 경제를 하게되면 땅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잘못 건드리면 가격폭등과 투기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부동산의 칠저하고 보다 합리적인 관리는 절대 필요하다.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옹색하게 좁은 집에 살아야하는 일본을 본받느니 작은 땅에서도 풍족하게 살아가는 대만·네덜란드·덴마크 등의 토지정책을 본받음이 옳을 것이다.
주식시장도 위험투자시장의 본래기능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 가격등락에 따른 위험은 투자자가 짊어짐이 당연한다. 정부가 나서서 선의의 투자자 보호라든지 정국안정이라는 명목아래 시장개입을 취한다면 하방경직적 주가구조에 대한 기대감과 투기현상만을 일으킨다. 주가가 오르면 이득을 보고, 떨어질 땐 「죽는다고 아우성치면 받쳐준다」는 심리구조가 증시 속으로 불건전자금을 유인하고 있다.
당장은 곤혹스럽다 해도 원론적으로 정부는 엄격한 경기심판자의 입장에만 서야한다. 위험기피자는 수익이 낮으나 보다 안전한 금융자산에 투자토록 해야하며, 그래야 돈의 흐름이 바로 잡힌다.
금융시장 역시 오랜 가뭄경제의 타성에서 벗어나야겠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목마른 기업에 성장통화를 공급하는 것은 저축이 부족하고 무역이 적자보던 시절에나 있던 일. 이젠 정책금융의 낡은 틀을 내던지고, 기업금융방식을 적극 개발하여 부문간 자금 과부족이 자동조절되도록 유도함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금융의 성적도 생산자 금융에서 소비자금융, 즉 실수요자 금융으로 바꿔어야 한다. 소비자금융의 경우 그 이미지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나 효율성면에서 시장경쟁원리에 보다 부합되는 일면이 있으며, 위험부담을 분산하고 대부자금의 회전을 높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실수요자금융을 통한 저변 확대와 기회분산이 바로 금융대중화라 할수 있다.
한편 대기업은 자기신용을 내걸고 필요자금을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토록 하며, 기존의 고정화대출금은 주식·전환사채로의 전환등 가급적이면 론 스와프를 통해 자금의 가용성을 높여가야 할 것으로 본다.
현재 통화압력이 크다. 한나라 경제의 혈관인 돈의 흐름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한치의 자율과 안정도 기대할 수 없다. 보통사람들이 정부를 외면하는 비정상경제는 결국 노도에 휩쓸리게 될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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