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냉정하게 뚫어 보는 한국 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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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외교관이 쓴 매크로 한국사
김준길 지음, 기파랑, 303쪽, 1만원

왜 이 제목일까. 역사학자도 아닌 외교관이 웬 한국사 책이며, 요즘처럼 디테일이 존중받는 시대에 '매크로(macro)'는 또 뭔가. 하지만 머릿말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문사 외신기자 출신인 저자는 1977~99년 외교부에서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마지막 직책은 워싱턴 주미 대사관 공보공사. 외교관 생활을 하며 저자는 서양인이 한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여진 영문 통사가 한 권도 없음에 참담함을 느꼈다.

퇴직 후 명지대 연구교수가 된 그는 독한 결심으로 작업에 매달렸다. 2003~2004년 미국 브리검 영 대학 교환교수로 일하면서 저술을 끝마쳤다. 2005년 1월 미국 그린우드 출판사의 '세계 각국 역사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된 '그린우드 영문 한국사'가 그것이다. '외교관이…'는 바로 그 책에 좀더 상세한 사료과 깊이 있는 해석을 덧붙여 펴낸 것이다.

'외교관'이 쓴 '매크로한' 책이라 해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문장이 유려하며 구성은 알차다. 특정 사관에 얽매임 없이, 마치 외국인의 그것처럼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취사선택한 '사실(史實)'과 '사실(事實)'들이 책의 값어치를 높인다.

사회학 석사 출신으로 평생 역사서 읽기와 사색에 몰두해온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픈 책이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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