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적 반발우려 「양권」 기습제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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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열흘 남짓 밀실 심사를 벌였던 민정당의 13대 총선 공천자 뚜껑을 열고 보니 「금요일의 대학살」 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탈락함으로써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새 얼굴도 많이 선 보여 「공천혁명」이라는 게 자체 평가지만 원칙이 없고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따르는 등 뒷얘기가 무성합니다.
-권익현 전 대표위원과 권정달 전 사무총장의 탈락이 이번 공천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죠. 「양권」 탈락 배경을 놓곤 해석이 구구합니다만 아무래도 노태우 대통령의 친정 체제 구축 일환으로 보여지며 그런 맥락으로 볼 때 파워 게임의 성격이 짙다고 봐야할 겁니다. 두 권의원과 함께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 의원의 탈락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면 5공화국 주도 세력들이 노대통령의 새로운 인맥에 의해 밀려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런 식의 해석에 펄쩍 뛰며 불쾌한 표정까지 짓더군요. 5공화국의 부정적 요소를 청산한다는 상징적 의미일 뿐이지 권력내부의 역학관계 변화나 파워 게임으로 보지 말라는 거죠.
-글쎄요. 앞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는데 있어 부담이 될 인사들이 물러섰으니…. 공천을 이용한 세력 제거가 아닐까요.
-노대통령의 공약대로 여당에서 계파 정치가 활성화 될 경우 「양권」의 부상은 쉽게 예상되는 대목이었죠. 한사람은 창당 당시 인연으로, 또 한사람은 대표위원·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 10∼20명쯤의 동원 능력을 갖춘 잠재적 실력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파벌 형성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론 이종찬 의원도 첫 손가락으로 꼽혔는데 「양권」이 직접 탈락한 것과는 달리 이의원의 경우 「손발제거」라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의원을 탈락시키는 여부도 신중중 검토됐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의원은 평소 온건파로 알려졌고 문민정치를 강조해와 그를 자를 경우 대국민 이미지를 고려했다는 소문도 있어요.
-이의원에 대해선 「별도의 대책」이 마련돼 있다는 풍문도 있어요 . 억측이겠지만….
-정석모 전 사무총장의 탈락을 권고문과의 친소관계 차원에서 해석하는 이도 있고 안영화 의원이나 당내 젊은층인 김원웅 청년국장·구천서 청년분과위원장·정요상 청년부장 등도 이의원이 밀었던 인사들로 알려져 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두 고배를 마셨어요.
윤길중·김숙현·봉두완·이찬혁 의원 등도 이종찬 의원과 무관하지 만은 않다는 얘기도 있어요.
-총선 후 정계 개편이 이뤄지면 내각제 개헌문제도 다시 거론 될 전망인데 이번 공천은 그 때까지를 상정한 정치적 포석의 의미도 있는지 모르죠.
-5년이란 짧은 임기로 미뤄 볼 때 이번 공천에서 친정 체제 구축과 후계 문제 구상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4년 후 또 한차례의 공천권 행사가 있지만 그 때가서는 아무래도….
-그러한 맥락에서 들여다보면 「양권」 제거는 이미 공천 작업 전에 계획돼 있었던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15일 밤 공천심사위의 1차 보고 때 「검토」라는 꼬리를 달아 최종결정을 유보해 놓자 『심사위가 챙겨 결정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심사위의 구조상 두 권의원을 탈락시킬 만큼의 힘은 없다고 보여지잖아요.
-심사위에서 최종 결정을 할 것인지, 상부로 미룰 것인지 여부를 놓고는 위원들 간에 논란이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자 심사위 결정을 주장하던 쪽이 언론에 흘림으로써 기정 사실화한 것이죠.
-「양권」탈락에 사전통보·양해 등이 생략된 채 기습적인 방법이 사용된 것도 특이한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당내 반발을 걱정한 듯 합니다. 불만이 조직화되기 전에 손을 쓴 거죠. 정보가 새어나가고 사전에 낌새를 챘다면 당사자가 어떤 경로를 통하든 예방책을 강구했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 마찰과 부작용이 뒤따를 테니까요.
-무슨 군작전 같군요.
-결정과정에선 상당히 과단성이 엿보이죠. 노대통령의 진면목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당초 계획이 있었다는 건 분명해요. 얼마전 경북의원 모임에서 김상구 의원이 자신을 포함해 경북의원 7명이 갈리게 되어 있으니 우리가 살려면 소선거구로 해야한다고 그랬대요. 결국 7명 모두 탈락되고 말았지만….
-28명의 탈락자 리스트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12대 때는 탈락자에게 묘자리까지 마련해 줬는데 이번엔 기습적으로 하다보니 관짝 조차 마련해 주지 않았다는 불만이 있어요.
-정부 각 부처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 지시가 내려갔다니 어느 정도 배려가 있지 않겠어요.
-항간에 떠돌던 16명설, 48명설, 60명설 등 이른바 「연희동 몫」이란 소문도 있었는데….
-명단을 주고받았다는 소문까지 있습니다만 모두 부인하더군요. 다만 당시 친위인사로 알려졌던 5인방 중 Y의원만 탈락됐고 나머지 4명이 건재한 것은 연희동 입김일 거라는 추측이죠.
허화평씨의 탈락, 이학봉씨의 공천이나 이진우·강우혁씨 등 전 청와대 수석들이 경합을 제친 점등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입니다.
-연희동 몫에 대한 배려 대신 김상구 의원이 대표적으로 속죄양이 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양권」 제외에 대해선 불쾌했던 과거지사도 곁들여 있을 것이란 소문도 있어요. 2·12총선 때 전국구 후보로 지원 유세하러 안동에 갔던 노 당시올림픽조직위원장에게 권정달 의원이 상석에 앉아 별로 말도 안 건네 노대통령이 10분만에 박차고 나가 그 길로 상경해 버렸대요. 노대통령이 대표위원이 된 후 육사출신 의원 모임에서 권의원 사과로 일단락 됐으나 감정의 앙금이 쌓여있을거란 추측이죠.
-유력시되던 인물이 막판에 교체되고 탈락 확정자가 기사회생한 경우도 적지 않은데 역시 당이나 정부내 실력자들과의 「줄」이 큰 힘을 발휘했다는 소문입니다.
-경남의 P의원은 염라대왕한테까지 갔다가 살아났고 부안의 최규환씨(육사 14기 동기회장), 육사를 중퇴한 영일의 이상득씨(코오롱상사사장) 등에 대한 소문이나 강원도 K의원의 회생을 놓고 말들이 많지요.
-탈락이 예상되던 영입 케이스 C의원도 당내 군출신의 대부 격인 Y의원이 밀었고 안병규 의원(진양),황병우 의원(청송-영덕) 등도 막판에 「지원사격」이 있었다는 겁니다.
-청원에 낙점된 신경직씨는 정일권씨가 끝까지 챙겨 주었답니다.
-이 밖에 막바지에 양천을구에 등장한 양창중씨, 고양의 이국헌씨 등은 공청심사위원 N모·L모 의원 등이 적극 지원했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심사위원 한사람은 문제 있는 의원을 끝까지 밀고 몇 몫 챙겼다는 소문이 벌써 나돌더군요.
-공천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막상 확정자가 발표되자 오히려 항의 시위가 뚝 끊어졌어요.
-「양권」의 탈락이 일종의 진정제가 된 거죠. 『두 권씨도 날아갔는데 우리 정도야…』하는 체념 때문인가 봐요.
-충남지역에서 지지자들의 반발이 심했던 정석모 전 사무총장, 김제의 조상내 의원, 그리고 「사무처 홀대」라며 격분했던 김원웅 청년국장 등이 공천자에게 축하의 화분이나 메시지를 보내는 등 즉각 자제하더군요. 분위기가 심상찮으니까요.
-그러나 저변을 흐르는 「반발의 흐름」은 그리 간단치 않을 것입니다. 특히 5공화국 인맥 청산부분은 앞으로 적지 않은 갈등을 초래할 겁니다.
-이번 공천을 놓고 탈락자 중에선 재력 싸움에 졌다는 불평도 나오더군요.
-재력을 중시하다 보니 병원장·사업가들이 대거 등장해 「민정종합병원」 「전경련민정지회」「대한상의지부」 등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있지요.
-이번엔 당에서 지원자금이 별로 없대요. 엄살인지…. 그래서 공천과정에 「재력」이 중시됐는데 대상자들에게 첫 질문이 최소한 10억원 동원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답니다.
-신진이 대거 발탁되자 민정당에선 총선 결과에 대해 걱정이 많아요.
-야권 후보들은 크게 「고무」되고 있는 눈치입니다. 서울에 신청한 모야당후보는 『햇병아리가 나왔다』며 희희낙락하고 있습니다.
-민정당 서울 공천자가 드러나자 야당에선 서로 약한 곳을 물색하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은 벌써 경합자가 수두룩하다는 거예요.
-현·전 야당 총재들이 출마하는 지역에 나선 민정당 공천자들이 「특별히」 약세인 것으로 드러나 모종의 배려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전주를 (이철승), 대구달서 (이만섭), 송탄-평택 (유치송), 금산 (유한열) 등이 그렇지요.
-총선 후의 여야관계를 고려하지 않았겠어요. 앞으로의 여야관계·개헌문제·보수연합등등을 생각한다면 동반 관계라는 게 중시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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