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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올림픽도 식후경일텐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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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지난해 말 강원도 강릉의 지인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과 KTX 경강선 개통 등의 호재를 타고 강릉 지역 음식값이 들썩인다는 제보였다. 그는 “올림픽은 한 달이면 끝나지만, 한 번 뛴 물가는 계속 남는다”며 “올림픽이 끝나면 시민들이 큰 부담을 떠안을 거라는 소문으로 지역 분위기가 무겁다. 물가라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직접 가보니 강릉·평창 등 올림픽 경기장 주변 식당의 음식값은 야금야금 오르는 중이었다. 지난해 가을 물회 한 그릇에 1만5000원이던 강릉 바닷가 횟집의 가격표에는 하얀 테이프가 덧대진 채 2만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평창군 횡계의 황태전문점에서 4만원 주고 먹었던 황태찜 대(大)자는 4만5000원으로 올라 있었다.

물론 모든 음식점이 한꺼번에 가격을 올린 건 아니었다. 취재 차 들른 음식점 중 20%쯤이 가격을 인상했다. 경포대 인근 한 횟집 주인은 “근래 오징어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폭등했다. 최저임금 시급(7350원)도 올랐다. 원가가 확 뛰어 버티기 힘들다. TV에 출연했거나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부터 값을 올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인상된 가격을 스티커로 붙여 놓은 강릉의 한 횟집 메뉴판. [우상조 기자]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인상된 가격을 스티커로 붙여 놓은 강릉의 한 횟집 메뉴판. [우상조 기자]

원가 상승 부담도, ‘올림픽 특수’에 대한 기대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방값(숙박비) 폭등’ 논란으로 눈살을 찌푸렸던 예비 관광객들에게 ‘밥값(음식값) 인상’ 소식은 달갑지 않다. 자칫하면 평창올림픽에 대한 염증을 일으키고 강원도 관광 기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 3일 ‘컨슈머인사이트’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평창올림픽 경기장을 직접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83%의 응답자 가운데 47.6%가 ‘숙박비가 비싸서’를 이유로 꼽았다. 그런데 음식값마저 오른다면 관광객들이 이 지역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금강산만 식후경이 아니라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8일 한국외식업중앙회 강릉시지부가 “가격 안정화를 위해 힘쓰겠다”며 “일부 업소가 올린 음식값을 낮추고 가격 인상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반가운 소식이다. 단속과 강제보다 자발적인 움직임이 소비자에는 효과적이다.

2020 여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은 ‘2020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올림픽 성공 개최를 넘어 ‘새로운 일본의 이미지 확립’까지 겨냥한다. 그 중 가격 인상 자제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이 왜 그렇게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