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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내 주머니 채우기식 변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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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노총이 10일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한국노총을 지휘하는 이용득 위원장(53.사진)은 소신대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1986년 상업은행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뒤 국내 최초로 육아휴직제를 실시했다. 2002년 금융산업 전체에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이제 노동운동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위원장을 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복지회관에서 만났다. 1시간3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이제 노조도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바꿀 것은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을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우리 노동계는 변화가 없다. 경제구조가 선진형으로 변했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아직도 농업국가나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 주머니 채우기' 식의 강성.이기주의적으로 변질된 채 흘러오고 있다. 산업의 변화 속도를 읽고 받아들여 미래를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맞게 사용자와의 관계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용자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경영의 부담을 함께 나눠야 한다. 그렇다고 '노조가 경영에 사사건건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 아니냐'는 식으로 해석하지 말라. 이제는 노조도 기업이 경영난을 겪으면 함께 책임 지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다. 경영이 투명한 기업은 노조와 정보를 공유하고 노사 화합의 표본이 되고 있다."

-노사관계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지적이 있다.

"노사관계에서 정부가 가장 큰 문제다. 노사 자율의 틀에 정부가 계속 끼어들려고 한다. 압축성장 시대에는 효율성이 우선시돼 일방적인 노동정책도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시장이 너무 커졌다. 예전처럼 정부의 일방적인 몇몇 정책으로 다룰 수 없는 시대다. 이젠 정부가 답을 내놓는 식의 노동정책은 안 된다. 노사 모두 불만만 갖게 된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대중의 지지가 없는 노동운동'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지금 노동운동은 양분돼 있다. 합리적 노동운동과 과거에 집착한 폭력적 노동운동이다. 가장 편한 운동방식은 투쟁이다. 반대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합리적 노동운동을 하려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대안도 내놔야 한다. 그래서 힘들다. 그래도 그 길로 가야 한다."

-지난해 비정규직법 최종안을 내놓으며 연내(2005년) 통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수정안도 무시됐고, 법안이 통과되지도 않았다.

"노사 간 쟁점이 되는 모든 것을 노조의 생각대로만 몰아가려 해선 안 된다. 그러면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 우리는 쟁점 중 두 가지는 경제현실을 감안할 때 양보해야 한다고 봤다.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는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쓸 수 있도록 제한하는 사유 제한과 불법 파견이 드러나면 무조건 정규직화하자는 고용의제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를 뺀 나머지는 국회에서도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두 가지가 안 됐다고 민주노동당이 단상을 점거해 판을 깼다. 이게 노동운동인가."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어떻게 보나.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처럼 만든 뒤 수년 동안 시행되지 않은 것은 법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대안을 마련할 시점이다. 금융 노사는 몇 년 전 '사용자가 4년 동안만 일정액의 기금을 내면 기금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전임자 임금의 70%를 부담한다. 30%는 노조가 조합비로 충당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노동부가 '사용자 기금 출자는 불법'이라고 했다. 노사 자율 합의를 부정했다. 그랬던 정부가 지금은 종업원 몇 명 이하 사업장은 적용을 유예하고, 기금을 허용한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일관성이 없다."

-로드맵과 관련해 민주노총과의 공조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비정규직법 처리 과정을 보니 (공조에) 회의가 든다. 합의하고 끌고 온 쪽은 한국노총이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투쟁을 하니 그쪽 말을 듣더라. 한쪽만 부담을 지는 상황이다. 양 노총의 공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독자적으로 교섭해 접점을 찾을 것이다."

-정치권에도 할 얘기가 많을 텐데.

"민주노동당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언제 수정안이나 타협안을 내는 것 봤나. 무조건 반대만 한다. 그렇게 하면 얻을 것도 못 얻는다. 무책임한 것이다. 노사정이 협의하는데 어떻게 자기 뜻대로 다 가져갈 수 있나. 그런 행동은 노동운동의 말살을 가져온다."

-전국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면서 한국노총이 최대 노총의 지위를 내줬다.

"한국노총은 별도의 공무원노조 조직을 만들 것이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노동운동의 반경을 넓혀갈 생각이다. 공무원노조의 상대가 정부인 점을 감안하면 법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한국노총은 민주노총보다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김기찬 기자

◆ 이용득 위원장=1986년 상업은행 노조위원장으로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96년 말에는 한국노총 투쟁상황실장으로 있으면서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며 한국노총 최초의 총파업을 이끌어 전투적 노동운동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금융노련 위원장 자격으로 금융산업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며 총파업을 주도했다가 구속돼 1년간 복역했다. 2004년 5월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뒤부터는 합리적 노동운동을 주창하며 노동운동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 반성 … 새 역사 쓰겠다"

한국노총은 1946년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당시 유일한 노동단체이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45년 결성)가 공산당의 지침에 따라 찬탁운동을 벌이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됐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47년 총파업을 두 차례 벌이다 경찰에 의해 와해됐다. 이후 국내 유일의 노동단체가 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은 54년 대한노총으로, 60년 한국노총으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노총은 70, 80년대 정부정책에 보조를 맞추다 '어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노동계 내부에서는 이런 한국노총의 움직임에 반발해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생긴다. 전노협은 이후 민주노총으로 발전한다.

전노협이 결성되기 전인 89년까지 전체 노동자 가운데 한국노총에 가입한 노동자는 19.8%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5.4%로 뚝 떨어졌다. 산하 노조 상당수가 민주노총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용득 위원장은 "당시의 행동은 강압에 의해 자율성이 제한된 시대의 아픔으로 이해해야지 어용으로 몰 일이 아니다"며 "어쨌든 우리는 과거 반성을 토대로 더 나은 노동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등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대타협은 외환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에는 이남순 전 위원장 등 지도부가 복지회관 건립과 관련,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등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또 재정의 상당부분을 정부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등 자립도도 낮다. 한국노총이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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