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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은 총재와 공정위원장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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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9일 퇴임했다. 박승 한은 총재는 이달 말 4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날 예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에서 돌아온 뒤 20일께 후임 인사를 할 것이라고 한다.

한은 총재는 어떤 자리인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으로서 금리 조절을 통해 시중 돈의 흐름을 좌우하며 물가안정을 도모한다. 공정위원장은 어떤가. 공정한 경쟁 여건을 만들어 자유시장경제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책임자다. 또 경제력 집중 방지를 이유로 재벌 규제의 칼까지 쥐고 있다.

이번 인선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두 사람의 임기가 다음 정권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시장이 환영하고 다음 대통령도 인정할 적임자만 뽑는다면, 두 사람은 정권 교체기에 가중될 경제의 불확실성을 완화할 파수꾼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두 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기를 바라는지, 금융계와 재계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 채권 펀드매니저는 한은 총재의 최우선 덕목으로 "시장과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통화정책의 방향을 예측가능하게 제시하는 능력"을 꼽았다. 어렵고 앞이 안 보일 때면 그의 '말'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시장의 '맏형'같은 역할이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그동안 한은 총재의 직설적이고 돌출적인 발언 때문에 여러 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국내외 경제 상황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기대했다. 그래야만 시장의 신뢰를 두텁게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금융시장이 대외에 활짝 개방된 상황에서는 국제 감각도 필수라고 그는 덧붙였다. 시장과 교감한 사안은 외풍에 밀리지 않고 실천해나가는 뚝심도 주문했다. 박승 총재의 경우 임기 초 여러 차례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실기를 거듭하다가 지난해 10월 이후에야 소신껏 금리를 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후임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기대는 이렇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글로벌기업들과 힘겹게 싸우는 우리 기업의 현실을 제대로 좀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담합 등 시장의 반칙 플레이는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기업들도 인정한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이유로 남아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소유.지배구조 관련 규제는 새 공정위원장이 과감하게 풀어줘야 한다는 주문이다.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경쟁정책을 펼치는 기관이다. 그런데 한국 공정위는 기업의 출자나 의결권행사 등 소유구조를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세계적으로 경쟁정책 당국이 이런 일을 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과거 한국 기업들끼리만 국내 경기장에서 뛸 때는 대기업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면 다른 중견.중소기업들이 거리를 좁히는 혜택을 좀 봤다. 하지만 지금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의 매머드급 경기장으로 진출해 해외 선수들과 싸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국내 대기업은 공정위가 채운 모래주머니를 계속 차고 다니며 경기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만만해 보였던지 이제 외국의 기업사냥꾼들이 국내로 들어와 통째로 먹겠다고까지 설치는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신임 공정위원장은 시야를 열어 우리 경제의 보다 큰 효율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게 재계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

김광기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