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더 큰 핵단추 있다" 김정은 손 잡으려는 文 견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일(현지시간) 북한의 신년사에 대해 두차례에 걸쳐 트윗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2일(현지시간) 북한의 신년사에 대해 두차례에 걸쳐 트윗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뉴스분석] 북한 신년사에 달려든 한국에 견제구 던진 미국

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전방위 남북대화 추진을 일제히 견제하고 나섰다.
"김정은의 대화 제의는 회의적" "핵을 포기할 때까지 우린 어떤 대화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물론 "한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협의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긴 했지만 다양한 형태로 미국의 우려를 전달하고 나선 모양새다.

트럼프, 유엔대사, 국무부, 백악관 일제히 간접 우려 표명 #긴밀 협의는 하지만 '압박과 제재' 기본틀 흔들릴까 우려 #"금명간 ICBM 발사할 듯" 보도 나오며 대화 회의론도

아무리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논의라고는 하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한 분석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이 급격하게 접근할 경우 '최대의 압박과 제재'라는 '기본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날 "북한이 금명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도발을 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란 정보까지 나오면서 "이 마당에 대화할 때가 아닌데…"란 우려도 나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처음으로 논평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 [트위터 캡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처음으로 논평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 [트위터 캡처]

이날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전날 "지켜볼 것(We'll see)"이란 한마디만 툭 던졌던 트럼프는 이날 올 첫 업무가 시작된 직후인 오전 9시 8분 트위터를 통해 "로켓맨이 처음으로 한국과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그건 아마도 좋은 소식(good news)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뜻 듣기에는 중립적 발언으로 들리지만 앞부분에 "제재와 '다른' 압박들이 북한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 점으로 볼 때 제재가 효과를 거둘 때 더 몰아쳐야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럴 때 북한 손을 덜컥 잡는 한국의 대응에 대한 불만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 [AP]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 [AP]

다음은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대사가 나섰다.
헤일리 대사는 오후 1시40분 기자회견에서 남북 당국 간 회담에 대한 질문에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면서 "그들이 핵무기 금지(폐기)에 동의할 때까지 우린 그걸(대화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핵무기 개발을 멈추기 위한 어떤 조치도 않는다면 그 어떤 대화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올림픽 참가'가 아닌 '핵 포기'만이 미국을 대화에 나서게 할 계기라는 주장이다.

헤일리 대사는 또 "북한이 또 다른 미사일 시험 발사를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보도를 듣고 있다"면서 "만약 그 같은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북한 정권에 대응해 더 강경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CNN과 MSNBC방송은 이날 복수의 군 정보관계자를 인용, "북한이 ICBM발사 준비를 하려는 움직임이 파악됐다. 수일 내에 발사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에서 브리핑하는 헤더 노어트 대변인[AP=연합뉴스]

미 국무부에서 브리핑하는 헤더 노어트 대변인[AP=연합뉴스]

하이라이트는 오후 2시에 있었던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의 브리핑이었다.
노어트 대변인은 먼저 "남북간 대화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질문에 "두 나라가 대화하길 원한다고 결정한다면 그건 분명히 그들의 선택이다. 우린 한국과 오랫동안 강한 동맹을 유지해 왔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며 확답을 피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두 나라(한미) 사이에서 어떤 이간질을 하려고 할 지 모른다. 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김정은이 앉아 대화에 나서는 진정성(sincerity)에 대해 매우 회의적(very skeptical)"이라고 강조했다. '회의적'이란 외교적 단어는 매우 강한 우려를 표명할 때 쓰는 표현이다. 노어트 대변인은 "우리의 정책(압박과 제재)은 변하지 않았다"란 말도 반복해 강조했다.

이어 브리핑에 나선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한국 정부의 고위급 남북회담 제안과 관련, "미국의 대북정책은 변함이 없다. 북한의 변화를 위해 최대의 대북압박을 가할 것이며 반드시 한반도를 비핵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선 최종 결정을 못 내렸다"고도 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북한의 참석을 끌어내기 위해 적극 대화에 나서는 한국 측에 대한 지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날 연쇄 대응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역시 트럼프였다.
그는 트위터에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방금 '핵단추가 항상 책상 위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다는 사실을, 식량에 굶주리고 고갈된 정권의 누군가가 그에게 제발 좀 알려주겠느냐"고 말했다. 또 "내 (핵)버튼은 작동도 한다!"고도 했다.
트럼프다운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신년사 내용, 나아가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놓곤 국무부나 헤일리 대사 등 다른 관계자, 부처보다 오히려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게 이례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올림픽을 명분으로 삼는 동맹국 한국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다만, 이날 미 정부가 일제히 보인 반응을 종합하면 남북대화를 대놓고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김정은은 불쾌하다", "만나더라도 평창올림픽 참가를 뛰어넘는 선까지 논의의 범위가 확대되면 좌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의 대화공세, 한국의 전면 화답이 자칫 한미동맹의 틈을 벌리고 국제사회의 전열을 흩트리는 결과가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원래 미국은 북한의 신년사를 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대화에 나서는 한국에 명쾌한 지지를 보내지 않는 이유는 북한의 의도와 전략에 대한 분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한국을 불쾌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 정부는 과연 북한이 한국의 회담제의에 응할 지, 만나면 양측이 어떤 논의를 할 것인지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신년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당초 지난해 말에 발표할 예정이던 미국 측 고위급 대표단 구성도 다소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명단에는 백악관에서 재리 큐슈너·이방카 부부, 국무부 고위 인사, 유명 스포츠선수들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린지 그레이엄 미 공화당 상원의원이 3일 CBS 방송에 출연해 "북한과 군사충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주한미군 동반 가족들을 철수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린지 그레이엄 미 공화당 상원의원이 3일 CBS 방송에 출연해 "북한과 군사충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주한미군 동반 가족들을 철수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북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2일 트위터에서 "만약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나온다면 우리(미국)는 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의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지구 상에서 가장 불법적인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라며 "한국이 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거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도 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