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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한국’, 중국 입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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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영주 산업부 기자

김영주 산업부 기자

중국 베이징 여유국은 지난해 12월 28일 현지 주요 여행사를 소집해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 판매를 다시 허용한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조건은 까다롭다. 무엇보다 단체관광을 취급하는 현지 여행사를 10여 개로 제한했다. 여기엔 중국 국영 여행사가 다수 포함돼 있어 사실상 한국행 단체관광을 중국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뜻이다. 반면 중국 단체를 취급하는 한국의 중국 전담여행사는 103곳이 영업 중이다.

‘103 대 10.’ 중국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한·중의 ‘비대칭’은 더 기울어졌다. 이는 한·중 양국이 골칫거리로 여기는 인두세·저가 덤핑 관행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인두세는 한국 여행사가 단체관광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 여행사에 돈을 주는 행위다. 인두세 인상 움직임은 9개월 만에 중국 단체관광이 재개된 지난달 이미 조짐을 보였다. 모두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초래한 일이다.

이런 관행은 중국인 비중이 큰 면세점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행사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쇼핑 일색의 여행 일정을 꾸릴 수밖에 없다. 면세점서 나오는 송객 수수료로 받기 위해서다. 단체관광 재개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가슴앓이’를 하는 이유다. 중국이 ‘갑’, 여행사가 ‘을’, 면세점 등 유통업계가 ‘병’이 되는 구조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내막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수년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국 여행객의 ‘한국 러시’는 관광 수요가 아니라 이재에 밝은 중국인의 성향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한국에 가면 관광도 하면서 고가의 상품을 구매해 현지에서 차익을 실현하는 게 그들의 관광 행태다. 이 때문에 명동거리엔 ‘순수 관광객은 없고 따이공(보따리상)만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에게 1억 명의 해외여행객이 무기라면 한국은 ‘쇼핑 경쟁력’이라는 무기가 있다. 중국인의 성향을 역이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방한 여행객 숫자에만 목맬 필요도 없다. 대규모 단체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한 만든 전담여행사 제도가 실익은 없고 문제만 유발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 고질적인 병폐를 고치지 않는 여행사는 지금보다 더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 한·중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한국 여행사는 중국에서 여행객을 모집할 수 없게끔 만든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에 기인한다. 정부는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이를 거론할 방침이었다고 하는데 이후 알려진 게 없다.

김영주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