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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지천명 맞은 현대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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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현대차 공장에서 품질을 점검하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중앙DB]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현대차 공장에서 품질을 점검하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중앙DB]

불과 20년 전까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품질이 형편없는 차량의 대명사였다. 우리로 치면 사오정·최불암 시리즈처럼 당시 미국에선 현대차 품질을 비꼬는 농담이 유행했다.
‘쏘나타 차량 가치를 2배 올리는 방법은?’ (정답: 주유) ‘현대차와 쇼핑카트의 차이점은?’ (정답: 카트는 밀기 쉽다) ‘도요타가 현대차를 만나면 뭐라고 할까?’ (정답: 견인해줄게) ‘포드가 길가에 정차한 현대차에게 한 말은?’ (정답: 편안히 녹스소서(묘비명을 패러디)). 이런 식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서 이런 농담이 유행한 건 ‘엑셀 품질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1986년 소형차 엑셀의 미국 판매 가격은 4995달러(약 530만원)에 불과했다.
웃음거리였던 현대차가 위기를 극복한 배경엔 품질에 대한 임직원·소비자의 탄탄한 믿음이 있었다. 미국 CBS방송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은 당시 최고 유행하던 농담을 방송에서 언급했다. ‘우주비행사를 겁주는 방법은?’ (정답: 우주선 제어반에 현대차 로고를 붙여라.)
몬태나주에서 이 방송을 들은 코너 라이언 씨는 레터맨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다. 현대차부터 타보고 품질을 논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은색 현대차 티뷰론을 몰고 6일 동안 무려 4000km를 달려 뉴욕 CBS 본사를 찾는다. 레터맨에게 티뷰론을 태워주겠다는 일념이었다.
아쉽게 레터맨은 방송국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소비자들 덕분에 현대차는 위기를 벗어났다. 50년 전 포드차 기술을 전수받아 조립만 하던 현대차는 이제 글로벌 판매대수 기준 5위로 올라서며 포드차(6위)를 넘었다.
현대차가 지난달 29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이번에도 수많은 악재가 현대차를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임직원들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똘똘 뭉치는 지는 의문이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4월부터 임금및단체협상에 돌입했지만 창립 50주년 역사상 처음으로 연내 타결에 실패했다. 현대차 노조는 3일 쟁의대책위원회를 개최하고 또 다시 파업을 선언했다. 4·5·8·9·10일 각각 조별로 4~6시간 부분파업하는 형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현대차를 제소하겠다”고 결의까지 했다.

문희철 기자

문희철 기자

나이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 한다. 공자가 50세에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원리(천명)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현대차 노조도 지천명을 맞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코너 라이언 씨는 티뷰론 구매자인 동시에 현대차 딜러로 일하던 임직원이었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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