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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사태'로 1400억 날린 DMS, 중국에 뿌리내리고 위기 극복

중앙일보

입력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국 공장 승인 소식에 들뜬 중견기업이 있다.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제작업체 DMS다. 이 회사는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중국 진출에 빠질 수 없는 1차 협력사다.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에 OLED 생산 공장을 짓게 되면 이 공장에 들어가는 습식·세정 장비의 절반을 이 회사가 공급한다. 습식·세정 장비란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들 때 이물질을 없애주는 장비다.

디스플레이 패널 습식·세정 장비 세계 시장 점유율 45% 달해 #중국 현지인 엔지니어 2000명 고용…매출액 90%, 중국에서 벌어 #"중국 무차별 패널 생산으로 내년 디스플레이 공급과잉 예상" #"헬스케어 등 불황기 버틸 수 있는 새로운 사업 추진할 것"

박용석 DMS 대표(사진)는 지난해 말 경기도 용인 본사에서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 인재들이 따로 창업한다면 몰라도 DMS의 디스플레이 세정 장비 제작 기술은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업계가 추산하는 DMS의 지난해 말 습식·세정 장비 세계 시장점유율은 45% 수준이다.

박용석 DMS 대표는 1999년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제작사업에 뛰어 들어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디스플레이 불황기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신사업을 찾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고민이다. [사진 DMS]

박용석 DMS 대표는 1999년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제작사업에 뛰어 들어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디스플레이 불황기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신사업을 찾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고민이다. [사진 DMS]

DMS는 1999년 설립 이후 LG디스플레이는 물론 BOE·CSOT·CEC Panda·EDO 등 대표적인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에 제조 장비를 공급해왔다. 이처럼 기술력과 점유율에서 압도적이지만 성장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키코(KIKO) 사태'로 이 회사는 소리 없이 사라질뻔했다. 이 회사의 키코 손실액은 1400억원으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92억원)의 15배가 넘는다. 키코는 은행과 기업이 환율 변동 구간을 정하고, 환율이 정해진 구간에서 움직이면 미리 약속한 환율에 외화를 거래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하지만 환율이 약속한 구간을 벗어나면, 기업이 은행에 차액만큼을 물어줘야 한다.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해 보려던 많은 국내 수출 중소기업이 피해를 봤고, 태산LCD 등 중견기업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디스플레이 시장 침체도 이어졌다. 지난 2012년부터 3년 동안 반 토막 난 매출로 버틸 때는 DMS 내부에서도 "이러다 회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기도 했다.

위기 극복의 발판은 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였다. 2005년부터 진출한 중국 시장은 인건비·법인세·물류비용 등 모든 면에서 '기회의 땅'이 됐다. 박 대표는 "한국 젊은이들은 소변 보기도 불편한 방진복을 입고 공장에서 일하라 하면 나가버리기 일쑤"라며 "중국에선 전문 엔지니어 2000명을 한국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첨단 기술 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는 15%로 파격적이다. 세전이익 200억원 초과 기업에 22%의 법인세율을 매기는 한국보다 혜택이 더 많다. DMS는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매출의 90%가 중국 기업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 생산 기반을 둔 것은 물류비용 측면에서도 이점이 되는 것이다.

이수민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2014년에는 설비 대부분을 중국으로 옮겨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며 "2015년부터 당기순이익 적자 구조가 흑자로 바뀌면서 빚 부담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DMS의 지난 2016년 말 당기순이익은 361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었고 부채비율도 103.7%로 50.7%포인트 감소했다.

사그라들던 DMS는 중국 덕분에 살아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회사의 미래를 불안케 하는 요인도 중국이다. 박 대표는 중국 기업의 무차별적인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은 올해부터 더욱 심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삼성디스플레이 등 한국 기업이 공급량을 조절해도 중국 기업이 부추긴 '공급 과잉'은 통제 불능이기 때문이다. 공급이 늘어 가격이 떨어지면 공장 증설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소형 풍력발전기, 태양광 장비, 야간투시경용 영상증폭관, 반도체 제조 장비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도전했던 것도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그러나 정부 규제와 경쟁사와의 가격 경쟁, 미성숙한 시장 상황 등으로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키우진 못했다.

박 대표는 "디스플레이 장비 제조 기술 격차를 압도적으로 벌려 경쟁사가 쫓아오기 힘들 정도로 만들겠다. 동시에 불황에 대비해 올해엔 헬스케어 등 새로운 사업 진출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인=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자료 : 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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