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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죽음으로 몬 스키 초짜의 질주…"헬멧착용 의무화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키장 사고는 교통사고처럼 헬멧착용 등 법으로 의무화 해야"

30일 경남 양산시 에덴밸리 스키장 상급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직활강하던 정모(17)군과 스노보드를 타고 S자로 내려오던 박모(46)씨가 충돌해 박씨가 숨지고 정군은 크게 다쳤다. [사진 JTBC 화면 캡처]

30일 경남 양산시 에덴밸리 스키장 상급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직활강하던 정모(17)군과 스노보드를 타고 S자로 내려오던 박모(46)씨가 충돌해 박씨가 숨지고 정군은 크게 다쳤다. [사진 JTBC 화면 캡처]

10대가 스키장 상급코스에서 활강하다 스노보드를 타고 앞서가던 40대를 들이받아 40대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스키장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해 이참에 헬멧착용 의무화 등 스키장 안전규정을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남 양산서 스키·스노보드 충돌해 1명 사망 #초보 상급코스서 직활강, 헬멧 미착용 가능성 #스키장 측 “법 규정 아니라 제지하기 어려워” #전문가들 “개인이 못 지키면 국가가 나서야”

지난달 30일 정오쯤 경남 양산시 에덴벨리 스키장의 949m 길이 상급 코스 중하단부에서 스키를 타고 거의 직선으로 내려가던 A(17)군이 S자를 그리며 스노보드를 타고 앞서가던 B(46)씨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B씨는 머리를 다쳐 숨지고 A군은 하반신에 중상을 입어 창원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 코스의 경사도는 27%(평지 0%)다.

에덴벨리 스키장 측은 “리프트 입구 CCTV 영상을 보니 B씨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은 B씨 몸에서 뭔가 튕겨 나가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잡혔다며 헬멧 착용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군이 S자가 아닌 직선으로 슬로프를 내려갔다”는 목격자 진술과 CCTV 영상을 토대로 A군이 초급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스키장 관계자도 “전문가들이 봤을 때 A군은 초급자의 자세였다”고 전했다. A군은 말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태라 아직 경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경찰은 형법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스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파른 스키장 슬로프를 내려갈 때는 S자로 타는 것이 정석이다. 직선으로 내려오는 직활강은 사고 위험이 커 대부분의 스키장이 금지한다. CCTV를 보면 A군은 거의 직선으로 슬로프를 내려오는 모습이 담겨 있다. S자를 그리며 내려오던 B씨는 뒤에서 오던 A군에게 부딪히면서 둘다 쓰러졌다.

30일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충돌해 2명이 사상한 사고가 발생한 경남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에 안전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30일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충돌해 2명이 사상한 사고가 발생한 경남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에 안전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에덴벨리 스키장 측은 스키장 곳곳에 헬멧 착용, 직활강 금지 등 안전규정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20여 개가 설치돼 있다고 주장했다. 전체 안전요원 수는 50~60명이라고 한다.
사고가 난 상급 코스 상단에도 직활강 금지 현수막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키장은 A군이 상급 코스에서 직활강으로 내려오는 동안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스키장 관계자는 “상급 코스에 안전요원이 10여 명 있지만 경사 때문에 잘 보지 못한 것 같다”며 “리프트를 탈 때 이용자가 초급자임을 밝히지 않으면 이용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스키장 측은 사고가 나고 15분 뒤에 119에 신고했다. 경찰은 체육시설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스키장이 안전운영을 제대로 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14~2016년 스키장 안전사고는 연평균 9688건 발생했다. 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두부손상 건수는 연평균 304건이었다.
스키장 활강 사고는 프로 선수들도 피하기 어렵다. 시속 120~160㎞에 달하는 속도로 급경사면을 내려오기 때문이다. 1964년 1월 호주의 스키 활강 선수 로스 밀너는 연습 도중 다른 선수를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나무에 충돌해 숨졌다.

전문가들은 “스키·스노보드는 도로에서 차·오토바이를 타는 것과 같다”며 헬멧 착용, 초급자의 상급 코스 금지 등을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명오(재난과학과) 서울시립대 교수는 “초급자 코스와 상급 코스가 하단에서 교차하거나 안전망을 부실하게 관리하는 문제 등은 몇 년 전부터 지적됐다”며 “스키장 구조에 대한 기준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A대학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모든 스포츠는 안전규정을 배워야 하는데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경험으로 익히려 하는 것은 문제”라며 “개인이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가 법으로 강제해 안전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이영주(소방방재학과)교수는 “법으로 만들어도 단속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스키장 역시 적극적으로 안전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스키장 이용 시 본인 수준에 맞는 슬로프를 선택하고 안전 장구를 꼭 착용해야 하며 스키 잘 타는 법뿐 아니라 넘어지는 법, 비상시 조치 요령도 함께 배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2000년 이후 스키장 사망 사고

2011년 강원도 한 스키장에서 20대 여성 안전망 뚫고 슬로프 밖으로 떨어져 숨져
2010년 강원도 정선군 한 스키장에서 10대 홍콩 관광객이 안전망에 부딪혀 숨져
2007년 경기도 용인시 한 스키장에서 영업 종료 후 눈썰매 타던 10대 숨져
2007년 강원도 한 스키장에서 스노보드 타던 초급자 내려오다 넘어져 숨져
2004년 강원도 춘천시 한 스키장에서 8세 초등학생 리프트 아래로 떨어져 숨져
2004년 경기도 한 스키장에서 동작 배우던 초급자 다른 이용객과 부딪혀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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