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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 높이기 위한 지주사 전환 급물살 탈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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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20면

[이것이 실전회계다] 태광그룹 사례로 본 지배구조 개편

최근 태광그룹이 오너 일가가 지분을 대량보유한 계열사들을 분할 또는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그룹 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논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을 거쳐 태광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업부별로 나누는 인적분할은 #기업 지배구조에는 영향 적어 #분할·합병으로 순환출자 단순화 #소액주주도 이득 볼 가능성 커 #재편 과정 합병비율 등 잘 챙겨야

비주력 3사 간 분할 합병을 놓고 지주회사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3사는 태광그룹 계열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외형이 작은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들 공시한 내용을 살펴보면 출자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력하게 유지하고, 동시에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태광그룹의 전략과 고민이 잘 드러난다.

우선 삼성전자의 예를 통해 기본적인 기업 분할과 합병의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삼성전자 사업부문은 크게 반도체·휴대전화·소비자가전 등 세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또한 삼성SDI(19.6%), 삼성전기(23.7%), 삼성중공업(16.9%), 제일기획(25.2%), 삼성디스플레이(84.8%), 삼성SDS(17.1%), 삼성바이오로직스(31.5%), 삼성메디슨(68.5%) 등 주요 삼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 자기주식은 고려하지 않음

※ 자기주식은 고려하지 않음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을 인적분할해 ‘삼성반도체’라는 새 회사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그림1>. 반도체 사업에 속하는 자산과 부채를 분할 신설회사인 삼성반도체로 이전하면 된다. 반도체 사업이 떨어져 나간 이후 삼성전자(존속회사)는 휴대전화 및 소비자가전 회사가 된다. 계열사 지분들도 사업 성격에 따라 존속회사와 신설회사가 나누어 가질 수 있겠다.

※ 자기주식은 고려하지 않음

※ 자기주식은 고려하지 않음

또 <그림2>와 같은 분할방법도 있을 수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휴대전화·소비자가전 등 3개 사업부문을 한데 묶어 분할, 새 회사를 만든다. 신설회사는 사업과 관련한 자산 및 부채를 모두 가지고 간다. 사업부문이 떨어져 나간 이후 존속회사는 삼성 계열사 지분들을 소유한 투자회사(자회사 관리 및 투자사업)가 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실제로 이렇게 분할하고, 존속회사가 삼성물산과 합병함으로써 삼성그룹 지주회사로 변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해 4월 “분할 의사가 없으며 따라서 지주회사로 전환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인적분할을 하면 주주 입장에서 지배력에는 변화가 없다. 예컨대 분할 전 회사에 대해 3% 지분을 가진 주주 김갑수씨는 분할 후 존속회사와 신설회사 각각에 대해 3%의 지분을 갖는다. 합병은 A사(존속회사, 주당합병가치 1만원으로 가정)가 B사(소멸회사, 주당합병가치 5000원)를 흡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합병비율(합병가치비율)이 1대 0.5기 때문에, A사는 B사(기업가치 80억원으로 가정)의 주주들에게 합병대가로 40억원 어치의 A사 신주를 발행해 나눠주면 된다.

태광, 한국도서보급을 사실상 지주사로

이제, 태광산업의 3개 계열사(한국도서보급·티시스·쇼핑엔티)가 지난 26일 제출한 공시와 핵심내용을 보자. 한국도서보급(2016년 매출 73억원)은 도서 상품권 발행, 티시스(2157억원)는 정보기술(IT) 통합관리서비스, 쇼핑엔티(281억원)는 홈쇼핑 통신판매업체다. 이 가운데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로 가장 크게 문제가 된 업체는 티시스다. 티시스 지분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장남 현준씨가 거의 100% 지배하고 있는데, 계열사들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75%~85%에 이른다. 태광그룹의 현재 지분구조(금융계열사 생략)를 보면 <그림3>과 같다.

한국도서보급이 출자구조 개편 과정에서 합병의 중심축이 된다. 왜냐하면 이 회사가 대한화섬·흥국생명·흥국증권·티캐스트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서보급이 티시스와 쇼핑엔티를 그대로 단순합병하면 IT 통합서비스 사업의 내부매출 규모나 비중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태광그룹은 티시스를 인적분할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즉 사업부문(IT 통합서비스 사업)을 존속회사로 하고, 티시스가 가진 계열사 지분들을 투자부문으로 몰아 분할한다. 티시스는 그룹 주력사인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투자부문을 다시 한국도서보급에 합병시킨다. 투자부문은 분할된 뒤 새로운 회사로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합병되기 때문에 이를 ‘분할합병’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도서보급은 대한화섬·태광산업뿐 아니라 흥국생명·흥국증권 등 제조 및 금융 주력사들을 아우르는 사실상 지주사가 된다<그림4>. 그러나 한국도서보급이 공정거래법 상 지주사로 전환하는 데는 몇 가지 제약이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이 일반지주사의 금융계열사 주식 보유를 금지하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편, 티시스는 이호진 전 회장 등 오너 일가가 97.4% 지배하는 회사였다. 인적분할을 하면 분할원리에 따라 오너 일가는 존속하는 티시스(IT 통합서비스 사업)와 분할되어 나오는 투자부문에 대해 각각 97.4%의 지배력을 갖는다. 존속회사 티시스는 어떻게 될까. 이 존속회사에 대해서는 오너 일가가 지분율을 20% 밑으로 떨어뜨려야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태광그룹은 이호진 전 회장이 존속회사 티시스 지분(55.8%, 지분가치 1000억원대)을 모두 제3자에게 무상증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증여대상까지 공개하지는 않았다. 업계는 태광그룹 공익재단 등에 지분을 넘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전 회장 부인과 두 자녀가 보유하는 나머지 지분(44.2%)도 차츰 정리해 20% 미만으로 조정할 전망이다. <그림4>에서 나타나듯 태광산업이 한국도서보급에 대해 3.9% 지분을 새로 갖게 되는 것은, 쇼핑엔티 지분 71.8%를 가진 주주였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피하려 활용

한국도서보급은 쇼핑엔티를 흡수합병하는 대신 소멸하는 쇼핑엔티의 주주들에게 신주를 발행해 배정한다. 만약 태광그룹이 한국도서보급을 공정거래법상 정식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 한다면, 이 지분 역시 정리해야 한다. 한편, 과거에는 합병대가로 존속회사의 신주 또는 자기주식(자사주)만이 가능했으나, 2012년 개정상법은 현금이나 주식 외의 현물도 허용했다. 그러나 여전히 거의 대부분 회사들이 신주발행을 선호하고 있다.

기업분할이나 합병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기업들이 주로 활용해 왔다. 투자자들은 과거처럼 복잡한 순환출자로 얽혀 한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전이될 위험이 있는 지배구조보다는 출자관계가 단순하고 경영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물을 수 있는 지주회사 체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을 분할한다는 공시가 나오면 대개 주가가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너로서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삼성그룹처럼 계열사들의 지분가치가 높아 향후 지주회사가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데 수십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경우에는 전환이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에 대한 비판과 개선 요구가 지속되자 정부의 칼날을 피하고 공정거래에 대한 의지를 바깥에 알리기 위해 기업들이 계열사 분할 합병을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한화S&C가 대표적인 예다. 한화그룹 총수 일가 지배기업인 한화S&C는 IT서비스 사업만을 떼내 새 회사를 만들고, 이 새 회사의 지분 상당량을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한화나 태광에 이어 앞으로 기업들의 출자구조 개편 움직임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이런 과정에서 투명성 제고와 함께 사업의 효율적 재편을 추구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시각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합병분할을 통한 출자재편 과정에서 합병비율이나 분할비율 등이 총수 일가에게 과도하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는지, 일반주주들의 권리(주식매수청구권)를 침해하는 부분은 없는지 주의 깊게 볼 필요는 있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이재홍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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