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多益善<다다익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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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29면

漢字, 세상을 말하다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대결은 한신(韓信)이 갈랐다. 한신은 백정 가랑이를 기는 ‘과하지욕(胯下之辱)’, 빨래터 아낙에 밥을 빌어먹는 ‘표모반신(漂母飯信)’의 굴욕을 이겨냈지만, 천하 통일 뒤 ‘토사구팽(兎死狗烹)’을 한탄했다. 『사기(史記)』는 이렇게 적었다.

“한신은 한왕(漢王)이 자신의 재능이 두려워 미워함을 알고 병을 칭해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한신이 어느 날 장수 번쾌(樊噲)의 집을 찾았다. 번쾌는 무릎 꿇고 절하며 마중했다가 다시 배웅하면서 자신을 신하라 칭하며 말했다. ‘대왕이 소신의 집까지 왕림했군요.’ 한신이 번쾌 집을 나서며 자조했다. ‘내가 살아서 번쾌와 같은 반열이 됐구나!’”

고조는 어느 날 한신과 함께 여러 장수의 능력을 말하며 각각 등급을 매겼다. 유방이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 군대를 이끌 수 있겠소?” 한신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10만 명을 이끌 수 있을 뿐입니다.” 황제가 물었다. “그대는 어떻소?” 한신이 답했다.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臣多多而益善耳).” 고조가 웃으며 말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면서 어찌 나에게 사로잡혔소?” 한신이 대답했다. “폐하는 군대를 이끌 수 없지만, 장수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께 사로잡힌 이유입니다. 또 폐하는 하늘이 주신 바이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명(明) 태조 주원장(朱元璋)도 권좌에 오른 뒤 돌변했다. 개국 공신 호유용(胡惟庸)을 반란모의죄로 제거했다. 장군 남옥(藍玉)도 모반죄로 처형했다. 두 사건에 연루돼 숨진 관리가 4만 명에 이르렀다.

마오쩌둥(毛澤東)도 다르지 않았다. 실력자 펑더화이(彭德懷)·가오강(高崗)을 숙청했고 국가주석 류샤오치(劉少奇)도 제거했다. 평민 황제는 줄곧 공신을 희생해 격을 높였다.

무술년(戊戌年) 새해다. 현 정부 2년 차를 맞아 창업 공신의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복(福)은 다다익선(多多益善), 화(禍)는 소소익선(少少益善)인 한 해이길 기원한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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