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씨가 맡은 활동은] 시골학교에 식수대 공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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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월드비전은 이라크 북부 모술과 서부 알룻바에서 국내 난민 보호와 전후 어린이 보호, 초.중학교의 식수.위생사업을 벌이고 있다.

나는 식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한국.미국.호주가 지원하는 사업부문을 총괄한다. 총예산 약 40억원으로 1백70개 초.중학교 학교에 식수대를 설치하고 위생적인 화장실을 짓는 일이다.

한국이 지원하는 사업 규모는 14억원으로 31개의 초.중학생 1만5천여명이 대상이다. 한국지원분에는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한 정부 지원금 2억4천만원도 들어있다. 월드비전한국은 또한 영원무역.이랜드 등이 기증한 의류 14만여벌(15억원 상당)을 니느웨 및 알룻바 지역에 나누어주고 있다.

깨진 수도관을 연결하고, 수도가 없는 시골학교에는 우물을 파고 물탱크를 설치해 동네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게 내가 맡은 일의 핵심이다.

그동안 전쟁으로 인한 폭격, 전쟁 이후의 방화와 약탈 등으로 대부분의 학교 시설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10월부터 2차 식수사업도 계획하고 있지만 규모와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이라크에 대한 관심이 약해져 모금이 어려워지면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월드비전 소속으로 일하는 사람은 모두 10명이다. 사업운영본부장, 물자 운반 및 배분, 재정 및 인력 수급, 안전, 홍보, 물 전문요원,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다. 한국 월드비전 53년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이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중책을 맡았다.

사업 진행에 필요한 현지인 직원을 고용하고(엔지니어만 10명, 일용직까지 합하면 1백명도 넘는다) 미군 민간협력담당관.유엔기구 대표 및 다른 국제 NGO들과 일이 중복되지 않게 조정하며 정부 관리 및 학교장을 만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또 일의 범위와 수위를 정하고 공사가 잘 진행되는지 관리.감독하는 한편 지역 내의 종교지도자 및 주민과의 관계를 돈독히 다져야 한다. 게다가 각 나라 정부와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사업보고서를 작성하고 예산을 관리한다.

현장에서 생기는 모든 골치 아픈 문제도 풀어야 한다. 전쟁 중 병영으로 쓰였던 학교에서는 심심치 않게 불발탄이 터져 인부들이 다친다.

학교장이 자기 집에도 물탱크를 설치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일도 처리해야 하고, 설치해 놓은 모터 펌프를 누가 훔쳐갔는지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2년 전 아프가니스탄 파견 때는 홍보담당이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도대체 월드비전 국제본부에서 나의 무얼 믿고 이런 막중한 일을 맡겼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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