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허가한 수사기록 복사 검찰서 막으면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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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허가한 수사 서류 등사(복사·사진 촬영)를 막은 검찰의 행위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28일 나왔다. 같은 내용으로 1991년에 첫 위헌 판단을 내린 이후 다섯 번째 동일한 결정이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신속·공정한 재판받을 권리와 #변호인 조력 받을 권리 침해" #1997년 이후 다섯번째 동일한 결정

헌재는 이날 결정문에서 “검사가 변호인에게 수사 서류를 열람하도록 하면서 등사는 허용하지 않는다면 실제 재판에서 청구인들에게 유리한 수사 서류의 내용을 법원에 현출할 수 없어 형사소송절차 상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이는 신속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헌재 관계자는 “형사소송법 제266조의4 제5항을 수시로 어기는 검찰의 수사 관행에 헌재가 다시 한번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조항은 검사가 수사서류의 열람ㆍ등사에 관한 법원의 허용 결정을 지체 없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증인 및 서류 등에 대해 증거신청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쌍용차 집회 당시 대치한 경찰과 시민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 2013년 쌍용차 집회 당시 대치한 경찰과 시민의 모습. [중앙포토]

앞서 이덕우 변호사 등은 2013년 7월 서울 중구 대한문 화단 앞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 문제 해결 촉구 집회에서 경찰 경비과장의 팔을 붙잡아 상처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의 행위가 체포 치상과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이 변호사 등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검찰의 수사 기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려고 했다. 검찰 측이 제출하지 않은 서류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수사에 차질이 생기는 등 특정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기록의 열람 등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검찰 사무규칙을 들어 이를 거부했다.

이에 이 변호사 등은 법원으로부터 등사 허가 결정을 받아 냈지만, 검찰은 열람만 허가하고 등사는 못 하게 했다. 결국 해당 자료들은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지 못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변호사 등에게 체포 미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위헌' 결정 반복됐지만…검찰은 수시로 '수사기록 열람' 거부

검찰 수사 기록 열람에 대한 논란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엔 검사나 판사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피고인과 피의자의 수사기록 열람·복사 권리를 보장했다.

피의자로서는 수사기관이 어떤 자료를 가졌는지, 자신에게 불리한 어떤 진술을 확보하고 있는지 알아야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법과 반대로 흘렀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늘려주는 법원의 판결이 계속됐고 몇 차례 개정된 형소법도 수사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면이 컸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한 건 “피고인이 수사기록에 접근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헌재의 결정(1991년)이었다. 사건 당사자는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뒤 검찰 수사기록 등사를 신청했다.

이후 재판 진행 중인 피고인의 수사기록 접근을 보장하는 헌재 결정(1997년)도 나왔다. 당시 헌재는 “수사기록에 대한 변호인의 열람과 등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헌재는 2003년에 다시 같은 내용으로 위헌을 결정했다. 법원도 변호인의 수사기록 열람을 대폭 허용하는 방향으로 실무 규칙을 변경했지만, 헌재는 2010년에도 반복된 수사 기관의 위법 행위에 대해 동일한 위헌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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