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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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동심리학자 「장·피아제」가 루소 연구소 부설유치원에서 재미난 실험을 했다.
6세 반 짜리 두 남자 어린이의 대화를 한달 동안 기록하여 하나의 사상을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단위로 분류해 본 것이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 말이 38%나 됐다. 자기중심적 말 가운데도 「집단적 독백」이 거의 20%나 됐다.
두 어린이가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대화가 아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뿐이지 둘은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피아제」는「집단적 독백」이라고 명명했다. 유아의 집단적 독백은 유아가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타인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이같은 사고를 「유아의 자기 중심성」이라고도 한다.
유아의 세계에서는 자기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숨바꼭질할 때 자기가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자기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몇이서 모여 함께 놀 줄 알게되는 7세정도가 돼야 유아의 자기중심성은 줄어든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새로 국어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자기중심적 사고의 영역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우리 교과서는『파란하늘에 우리 태극기…태극기를 답니다』부터 가르치고 있다. .
「나」이외에 「너」가 있고 「나」와 「너」가 모여서 「우리」가 된다는 이치를 가르치기 전에 태극기와 애국가와 무궁화를 가르쳐서 애국심을 강요하는 꼴이다.
학자들 가운데는 단어도 배우지 않고 문장부터 가르치는 것이 국어교육상 옳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또 꼭 필요한 기본학습 어휘는 빠지고 대신 엉뚱한 복합어와 신조어가 많이 들어간 비과학적 편찬체계에 불만을 지적한 적도 있다.
내년부터 사용할 새 국민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가 그 모든 불만을 해소한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우선 「나」「너」부터 배우는 교과서가 되었다는 것만도 큰 진전이다.
이제 남의 존재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집단적 독백을 예사로 아는 우리네 정치인들만이라도 유아기를 벗어나게 할 수 있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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