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의 술집 골목 어귀엔 TV중계 함께 보던 우리의 옛 모습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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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로메의 한 주택가 골목길에 모여 TV로 축구 경기를 함께 지켜보는 사람들. 로메(토고)=박종근 기자

아프리카 사람들은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다. 오로지 축구를 하고, 보고, 듣는다. 라디오로 중계를 듣다가 자기 팀이 지면 속상해서 밥을 굶는 사람도 많다.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가 열리면 자기 나라 경기가 아니어도 TV 앞으로 모여든다. 삶의 에너지를 축구에 집중하다 보니 축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이집트-코트디부아르)이 열린 2월 10일 오후. 토고의 수도 로메 시내는 한산했다. 사람들은 TV 수상기 앞으로 몰려들었다. 토고의 TV 보급률은 20% 정도. 우리나라의 1970년대 박스컵 축구대회나 김일 레슬링을 할 때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맥주.음료수 등을 파는 시내 선술집 앞에는 택시 기사들이 세워놓은 오토바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토고는 오토바이로 택시 영업을 한다). 아이스크림 장사들도 좌판을 내려놓고 TV 앞에 진을 쳤다. 이들은 취재진을 보더니 "토고 투, 꼬레 제로"라고 소리쳤다. 월드컵에서 토고가 한국을 2-0으로 이긴다는 얘기였다. 토고 사람들의 계산은 지극히 단순하다. 아데바요르가 한 골, 쿠바자가 한 골을 넣고 골키퍼 아가사가 한 골도 안 먹을 테니 2-0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택가로 접어들자 재미있는 풍경이 보였다. 골목 어귀 커다란 나무 아래 놓인 TV 수상기 앞에 동네 사람 1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곳은 담벼락 하나 사이로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모여 사는 동네다.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 무슬림은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를, 기독교인들은 코트디부아르를 응원했다. 그렇지만 '종교 분쟁'은 없었다. 흥겹게 응원하고, 경기가 끝나자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TV 주인인 조니(37)는 "축구 중계를 할 때마다 TV를 내놓는다.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모여 응원하면서 보는 게 훨씬 재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메(토고)=정영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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