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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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와대 앞길은 우리나라 정치의 앞 마 당 만큼이나 무상하다. 열렸다, 닫혔다, 시세의 변화 그대로다.
이승만 대통령시절엔 독재니 뭐니 해도 덜렁거리는 전차가 경무대(청와대 그전 이름)어귀까지 갔었다. 4월 하순 벚꽃이 한창일 무렵에는 시민들이 그 전차를 타고 경무대 뜰에 가서 꽃구경도 했다.
4·19때는 때마침 공사 중이던 상수도 관을 굴리며 대학생들이 경무대 앞까지 밀려갔었다.
『그렇게 물렁하니 밀러 났지』이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대통령 시절에도 보통시민들이 청와대 주변을 얼씬거릴 수 있었다. 자하문 쪽으로 오르내리는 버스들도 비실거리지 않고 그 옆을 지나다녔다. 늦가을이면 우수수 떨어진 은행나무 잎사귀를 흩날리며 버스가 달리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들이 정치가 비틀어지면서 차츰차츰 시민들의 눈에서 멀어져 갔다. 1983년 아웅산 사건이 있고 나서는 아예 볼 수 없게 되었다.
요즘 전두환 전대통령은 어느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흉가 같은 청와대에서 살아서 걸어 나가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국민과 대통령의 사이가 TV화면만으로 가까워 질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무위원인 장관들은 물론이고 대통령 비서실장까지도 청와대 안에서 사진과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다녔다.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먼 나라 얘기지만 핀란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1952년 스웨덴의「구스타프」6세「아돌프」왕이 헬싱키를 방문, 사열을 받고 있는데 어디서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가 왕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주위의 사람들은 뜻밖의 일에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순간 의장대장은 그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사열을 계속했다.
그 다음날 이곳 신문들은 그 일을 일제히 사회면 톱으로 보도했다. 의장대장 사무실은 시민들이 보낸 꽃다발 속에 묻혔다. 동화 같은 얘기다.
나라가 안온하면 이런 아름다운 일도 있다. 우리나라는 언제 살벌한 역사와 살벌한 일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모처럼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다는데 그 좋은 뜻이 시늉에만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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