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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아기 셋 내성균 유전자 일치 … 의료진이 옮겼을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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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대목동병원에서 잇따라 사망한 신생아 4명의 발인이 19일 엄수됐다. 이날 한 신생아의 부모가 운구차에 실린 아이의 관을 바라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이대목동병원에서 잇따라 사망한 신생아 4명의 발인이 19일 엄수됐다. 이날 한 신생아의 부모가 운구차에 실린 아이의 관을 바라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이대목동병원에서 숨진 4명의 신생아 중 3명에게서 나온 세균의 오염원이 의료진일 가능성이 커졌다.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19일 검출된 장내 내성균 ‘시트로박터 프룬디’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홍정익 질본 위기대응총괄과장은 “유전자 염기서열이 같다는 것은 세 명한테 나온 균이 같은 균이고 항생제 내성균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이는 세 아이가 같은 오염원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염기서열 같아” #“기저귀 간 손으로 공갈 젖꼭지 물려” #이대목동병원 유가족 증언도 #경찰, 신생아 중환자실 등 압수수색 #세균 감염 경로 다각도로 추적

홍 과장은 “세 명에게서 검출된 균이 같다는 것은 사람이 옮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의료진 누군가가 균에 오염된 상태에서 세 명의 아이를 만지면서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홍 과장은 “이대목동병원이 감염 관리에 부실했거나 미흡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료과실이나 감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유가족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의료진이) 기저귀를 갈고 나서 땅바닥에 버리고 그걸 다시 손으로 집었다. (그 손으로) 선반에 있던 공갈 젖꼭지를 바로 아기 입에 댔다”고 말했다. 질본의 조사 결과 문제의 균은 페니실린·세파 계열의 항생제를 써도 죽지 않는다. 반코마이신·메티실린 내성을 보이는 수퍼박테리아급은 아니지만 장내 세균 중에서는 강력한 균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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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도 신생아들의 세균 감염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질본과 합동으로 이날 오후 이대목동병원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신생아들이 사망한 11층 중환자실과 전산실 등을 살폈다. 이곳에서 수사팀은 기기 오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약물투입기·링거 등 신생아들이 접촉했을 법한 각종 물품을 압수했다. 앞선 수사에서 가져오지 못했던 의무기록도 압수물에 포함됐다. 광역수사대는 감염원의 매개체 가능성이 있는 의료기구들은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낼 예정이다.

경찰은 사망 신생아 4명 모두 정맥영양(TPN) 치료 중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TPN은 포도당 등 다른 수액과 달리 중간에 의사의 제조 과정이 들어간다. 의사가 환아 개개인별로 알맞은 양을 섞어 투약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양을 착각했거나 투약한 약이 오염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휴지통에 버려진 TPN 관련 물품도 수거했다.

경찰은 현장조사 첫날 수거한 모유도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관리 부실로 인한 오염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산모들은 신생아 중환자실 실장이던 조모 교수의 권유로 평소 모유를 유축해 얼린 뒤 의료진에게 건네 왔다고 했다. 최병민 고대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미숙아들에게도 모유 수유를 권장하고 있다. 다만 엄마가 집에서 유축해 온 모유가 상할 수 있어 주로 얼려서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유족은 의료진이 충분한 설명 없이 모유 수유와 관련한 임상시험 동의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한 유족은 “의료진이 ‘모유가 세 타입이 있다. 이걸 가지고 임상시험을 하자’고 제안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날 이대목동병원에서는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1시20분까지 숨진 신생아 4명의 발인식이 치러졌다. 태어난 지 9일 된 딸을 잃은 아빠 정모씨는 발인식을 마친 뒤 인천에 있는 한 화장장으로 향했다. 정씨는 하얀 천이 덮인 작은 관에 손을 올렸다.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한 딸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였다. 그는 연신 “아빠가 미안하다”고 했다. 정씨 부부는 딸이 숨진 지 이틀째 되는 날인 18일에야 이름을 지어줬다. 아이의 엄마는 딸이 한 줌 재로 변한 시각,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아들에게 갔다. 엄마는 숨진 딸과 함께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었던 쌍둥이 아들의 출생신고를 했다.

조한대·김준영·하준호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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