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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줄게" 극우 연립 오스트리아, 남티롤에 러브콜

중앙일보

입력

오스트리아 제국 영토였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복속된 남티롤. 천혜의 산맥으로 꼽히는 돌로미티 일대에 3000미터가 넘는 18개의 봉우리와 빙하, 드넓은 초원과 계곡이 어우러진 절경에 살기 좋은 전원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중앙포토]

오스트리아 제국 영토였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복속된 남티롤. 천혜의 산맥으로 꼽히는 돌로미티 일대에 3000미터가 넘는 18개의 봉우리와 빙하, 드넓은 초원과 계곡이 어우러진 절경에 살기 좋은 전원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중앙포토]

31세 총리가 이끄는 오스트리아의 우파-극우 연립정부가 출범 첫날부터 외교 정치적으로 민감한 화두를 건드렸다. 인접국 이탈리아에 속해 있는 과거 영토 남티롤 주민들에게 오스트리아 이중국적을 허용하겠다는 ‘폭탄 구상’이다.

과거 오스트리아 영토, 현재는 이탈리아 소속 자치령 #"남티롤 주민들에 이르면 내년부터 이중국적 허용" #우파-극우 연정 출범 첫날 예민한 영토 언급 파장 #이탈리아 측 "열린 유럽에 심각한 결과 초래" 발끈 #

18일(현지시간) 우파 국민당의 제바스티안 쿠르츠(31) 대표는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앞에서 총리 취임 선서를 하고 공식 취임했다. 극우 정당으로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중앙정부 연립 파트너로 합류한 자유당의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대표도 부총리에 취임했다.

폭탄 발언은 이날 자유당 소속 베르너 노이바우어 의원에게서 나왔다. "남티롤 주민들은 이르면 내년부터, 늦어도 2019년 초부터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라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왼쪽)이 16일(현지시간) 차기 정부의 조각 계획을 언론에 설명하고 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국민당 대표(가운데)는 차기 정부 총리를 맡게 되며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자유당 대표(오른쪽)는 부총리를 맡는다. [EPA=연합뉴스]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왼쪽)이 16일(현지시간) 차기 정부의 조각 계획을 언론에 설명하고 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국민당 대표(가운데)는 차기 정부 총리를 맡게 되며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자유당 대표(오른쪽)는 부총리를 맡는다. [EPA=연합뉴스]

남티롤은 알프스 산맥을 사이에 두고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탈리아 최북단 자치구다.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합병돼 이탈리아에선 트렌티노-알토 아디제로 불린다. 주민의 70%가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하는 등 오스트리아와 역사·문화적으로 동질성을 띤다.

노이바우어 의원의 구상은 전체 남티롤 주민이 아닌 독일 모국어의 게르만계 주민들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향후 이 지역 출신 선수들이 올림픽 등 국가 대항전에서 오스트리아를 대표해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천혜의 돌로미티 산맥을 끼고 있는 남티롤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 등 유명 스포츠인을 다수 배출했다.

오스트리아 극우가 남티롤 껴안기에 나선 것은 남티롤 자체적으로 분리 독립 움직임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1972년 협정을 통해 상당한 수위의 자치권을 확보한 남티롤은 경제적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편에 속한다. 사과·와인·치즈 등 3대 특산품이 세계적으로 유명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2000유로(약 4000만원)로 이탈리아 전체(2만2800유로)에 비해 훨씬 많다.

게다가 2009년 유로존 위기 이래 이탈리아 경제가 계속 후퇴하면서 남티롤이 중앙정부에 내는 세 부담이 가파르게 커졌다. 남티롤 안에선 “우리마저 나머지 이탈리아와 함께 추락해선 안 된다”(에바 클로츠 남티롤 자유당 대표, 2012)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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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발끈했다. 베네데토 델라 베도바 외무차관은 "인종적·국가주의적 기반을 근거로 이중국적을 인정한다는 오스트리아 새 정부의 제안은 다문화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열린 유럽’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극우정당인 이탈리아형제당(FDI)의 조르지아 멜로니 대표도 오스트리아에 "이탈리아에서 손을 떼라"고 직접적으로 항의했다.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 역시 "유럽은 현재 많은 단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가주의적 시대를 종결했다"며 오스트리아 새 정부의 제안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극우 자유당의 오스트리아 연립정부 참여에 반대하는 표어를 든 시위 참가자. [AFP=연합뉴스]

극우 자유당의 오스트리아 연립정부 참여에 반대하는 표어를 든 시위 참가자. [AFP=연합뉴스]

자칫 제2의 카탈루냐(스페인 자치령) 사태를 부를 수 있는 제의지만 남티롤 자치정부 측은 떨떠름한 반응이다. 이탈리아 중앙정부와 비교적 우호적인 ‘남티롤 국민의 당’ 출신의 아르노 콤파처 주지사는 "국가주의적인 정책은 '헌신적인 유럽인'으로서의 남티롤 주민들의 지위에 위배된다. 우리는 (두 문화를 잇는) 다리와 중재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오스트리아에 합병되기보다 자치권을 확대하는 쪽에 방점을 둔 입장이다.

1991년 자체적으로 실시된 비공식 투표에선 남티롤 내 독일어계 주민 다수가 이탈리아에 남는 걸 원했다. 반면 오스트리아 연구소 카르마신의 조사에선 독일어 혹은 소수 언어인 라딘(Ladin)어를 하는 남티롤 인구의 54%가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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