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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지하철 1~4호선 파업 막은 강경호 서울메트로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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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철도공사 노조가 4일 파업 철회를 선언하고 업무에 복귀함으로써 출퇴근 대혼잡과 물류 수송의 혼란은 조만간 해소될 전망이다. 철도 쪽이 파업으로 곤욕을 치른 반면 하루 400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옛 지하철공사)는 정상적으로 지하철을 운영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서울메트로가 극적으로 파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가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 남짓한 기간 중 37차례나 만나며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사측의 사령탑인 강경호 사장은 '원칙과 대화'를 내세우며 노조와의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3일 오전 서울 방배동 서울메트로 본사에서 강 사장을 만났다.

-파업을 피했을 뿐 아니라 협상 결과도 사측의 뜻대로 나와 사측이 완승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사 협상 결과를 두고 승패를 따지는 것은 곤란하다. 굳이 말하자면 노사가 윈-윈(win-win)한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노조와 사측으로 갈릴 수밖에 없지만 테이블을 벗어나면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서울메트로는 전체 직원 9800여 명 중 노조원의 비율이 92%에 이르기 때문에 노사를 가르는 게 의미가 없다."

-파업 예정 시각(1일 오전 4시)을 7시간 앞둔 시점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측의 주장이 먹혀든 비결은.

"어떤 경우에도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노조에 각인시켰다. 과거에는 회사의 원칙이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나는 2003년 4월 부임 이후 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입장을 꾸준히 강조해 왔고 협상장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노조가 회사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는구나' '힘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점들을 깨닫게 됐을 것이다. 밀어붙여도 얻어 낼 게 없다면 결국 타협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노조가 스스로 강성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했을 수도 있다. 민주노총과 보조를 맞춰 파업일을 1일로 정한 것은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힌 셈이 됐다."

-회사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란 어떤 것인가.

"해고자를 복직시킬 수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노조가 복직을 요구한 해고자 17명은 모두 노조 활동과 관련된 사람이다. 해고자 개인 입장에서 보면 안된 일이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다시 파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또 해고가 불가피하다. 해고-복직-파업-해고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되면 노사 관계의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

-노조의 7.3% 임금 인상 요구를 사측안대로 2% 인상으로 관철시켰는데.

"해고자 복직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물러설 수 없는 원칙 중 하나가 임금 문제다.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벗어나기 어렵다. 임금을 많이 올려줘 행정자치부가 실시하는 경영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으면 나중에 성과급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고 노조를 설득했다." (그러나 강 사장은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이 공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임금을 묶어둘 것이 아니라 경영성과에 따라 임금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을 100원 줄일 경우 10~20원을 조합원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면 죽기 살기로 조합원들이 따라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과거 노사 협상에서 사측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나.

"유감스럽지만 그렇다. '노사 합의 승진'이 바로 그것이다. 승진 적체가 심각하다는 명분을 앞세워 노조가 요구하면 회사가 직급별로 정해져 있는 정원을 무시하고 한 해 수백 명씩 무더기로 승진시켰다. 그러다 보니 높은 직급에서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아래 직급은 정원을 못 채우는 직급 구조 왜곡현상이 발생했다. 승진 규정을 어긴 것이고 인건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도 인상 가이드라인은 지켰지만 수당 인상 등 편법으로 올려줬다."

-예전에 회사 측은 왜 이 같은 변칙을 수용했나.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최고경영자의 경영 능력이 의심받기 때문에 우선 급한 대로 불을 꺼야 한다. 심한 경우 노조가 회사 경영진을 제쳐 두고 서울시장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짓기도 했다. 단위 노조의 문제에 정부나 서울시가 개입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과거의 나쁜 선례를 어떻게 차단했나.

"변칙적인 양보가 나중에 감사에서 적발돼 기관경고나 문책인사 등의 후유증을 불러왔다. 협상 과정에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섣불리 했다가는 나중에 노조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사 교섭 때마다 '앞으로 합의 승진 같은 변칙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회사의 원칙만 강하게 내세운다고 해서 협상이 잘 됐을 것 같지는 않은데.

"노조의 신뢰를 얻기 위해 힘썼다. 노사가 합동으로 국내 다른 공기업의 임금 결정 과정을 살펴봤고, 2003년 12월엔 독일.영국.일본.대만 등 유럽.아시아 8개국의 지하철 노사 관계를 현지 조사했다. 모두 노조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나를 포함한 간부들이 부지런히 노조원들을 찾아다니며 대화했다. 사장이나 관리본부장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노사 협상이 제대로 되겠나. 노조원 워크숍에서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고 거리낌없이 토론하면서 장벽을 없애려 노력했다. 물론 양보할 것은 양보했다. 정원에서 부족한 인원 272명을 5월 말까지 채용공고를 내 충원하기로 했고, 업무상 단순 과실로 해고된 직원들을 복직시키기로 했다."

-현장을 수시로 방문한다고 들었다.

"서울메트로는 역사(驛舍)가 115개, 차량기지가 5개나 되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돌아봐도 시간이 부족하다. 취임 후 지금까지 분당에서 사무실까지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승객들이 불편해하는 점, 개선해야 할 점 등을 찾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에 아직까지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남아 있다."

-노조가 상급단체와 연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사 문제는 단위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노조가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협상장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이번 노사 협상의 쟁점인 근무형태.근무인원 조정 문제는 2004년 7월 주 5일제 근무가 도입되면서 불거졌다. 당시 노조는 철도공사 등과 연대했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인력 충원 등을 요구했다. 올해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이 많다면 모르겠지만 서울메트로의 비정규직은 작업장에 딸린 식당 근무인원 70여 명 정도다. 그런데도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잘못이다."

-이번에 노사가 합의한 내용은 8~10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야 한다. 근무형태 조정은 6월까지 시간을 벌어놓긴 했지만 그때 다시 진통을 겪는 것 아닌가.

"합의서는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효력을 갖는다. 물론 반대표가 더 많을 경우 노조 지도부는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근무형태 조정 문제는 노사 간 입장차가 여전하지만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노조는 변화나 혁신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자들이 구조조정한다며 인원과 봉급을 줄이는 것을 능사로 삼아온 탓이다."

-취임 전 한 해 4000억원에 달하던 경영적자를 해마다 1000억원씩 줄여 지난해 817억원이 됐다. 현재의 경영 상태는.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공사의 입찰에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하는 등 자구노력을 했다. 공기업도 기업인 이상 수지에 신경 써야 한다. 지하철 안전과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무임 수송 비용이 지난해 1041억원이다. 이것만 정부에서 지원해 주면 당장 올해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

만난 사람=김상우 사회부문 차장
정리=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 강경호 사장은 …

1972년 현대그룹 공채로 입사, 38세에 한라중공업 이사가 됐으며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99년 한라중공업을 떠난 뒤 한때 정보기술(IT) 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2003년 4월 공모를 통해 임기 3년의 서울지하철공사 사장이 됐다. 취임 후 지하철 역사(驛舍)와 전동차의 광고수입 확대, 회사가 발주하는 공사의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해 만성적자이던 서울메트로를 흑자로 바꾸기 위해 힘써왔다. 지난해 10월 회사 이름을 서울메트로로 바꿨다. 1945년 서울 태생으로 경기고, 서울대 공업교육과를 졸업했다.

*** 노조가 본 강 사장

"새로운 시도 많이 해…주변 얘기 안 듣는 게 흠"

박덕남 서울메트로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역대 여러 분의 사장을 겪어봤으나 강 사장은 여느 사장보다 의욕적이고 대기업 CEO 출신답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고 평가했다. 박 실장은 ▶지하철 역세권 개발 권한을 서울메트로가 가질 수 있도록 서울시와 시 의회를 설득한 것 ▶외국의 지하철을 노사가 함께 벤치마킹하는 기회 마련 ▶최저가 낙찰제 등을 통한 경영 수지 개선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노조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노사 간 쟁점이 됐던 부분에 대해서도 시각차가 완연하다. 근무형태와 관련해 강 사장은 "노조에서 추천한 외부 전문기관이 제출한 용역 결과가 현행 3조 2교대 근무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인 만큼 노조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조는 용역을 주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