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에 대한 ????는 시민의 권리"|미 대법원 새 판례 남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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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워싱턴=한남규 특파원】언론자유천국 미국의 최고재판소는 24일 자유의 폭을 넓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공인에 대한만평 또는 풍자가 제한될 수 없다는 판결이다.
83년『허슬러』라는 성인잡지는 저명한 목수「제리·폴웰」씨를 풍자대상으로 삼으면서 그가 화장실에서 어머니와 성 관계를 가졌으며 설교도 술에 취했을 때만 한다는 내용을 게재했다.「폴웰」목사는「감정상의 고통」을 유발했다는 이유를 들어 잡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잡지사는 목사에게 2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배심원평결이 이미 나와있었다.
그러나 최고재판소는 이날 만장일치로 배심원평결을 번복한 것이다.「윌리엄·렌퀴스트」대법원장은 그가 쓴 판결문을 통해『미국시민의 특권 중 하나는 공인과 그들의 결정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라고 선언하고『그러한 비판은 항상 논리에 맞고 온건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공인이라면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로는 불쾌한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판결문은「폴웰」목사와 어머니의 눈이 음탕하고 기분 나쁘다는 등의 풍자를 비난했지만 그같은 풍자라도 1차 수정헌법의 언론자유의 보호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이 판결이 특히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공인에 대한 풍자가 첫 번째 재판대상이 된데다가「감정상의 고통」역시 처음으로 제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최고재판소가 다뤄온 언론문제는 명예훼손 또는 사생활침해 등이었던 것이다.
특히 미국언론은 보도에 대한 소송이 급증하는 추세에 몰리고 있던 터에 이번 건처럼 「감정상의 고통」으로까지 송사의 대상이 확대되는데 대해 비상한 관심을 쏟아왔다. 더구나 언론에서는「렌퀴스트」대법원장이 과거 언론인에 대한 헌법상의 보호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은근히 판결결과에 대해 우려해왔던 터였다.
이번 판례에 따라 앞으로 풍자에 대한 소송이 승리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첫째 풍자 속에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한다. 둘째「사실이라고 주장한」내용이 사실이 아니어야한다. 세째 만평을 그렸거나 풍자를 쓴 사람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어야한다. 이 세가지중 한가지라도 갖추지 못하면 소송은 지게됐다.
이번『허슬러』지 풍자의 경우 성 관계 운운 대목은 아무도 믿지 않을 내용이며 따라서 사실의 적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풍자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렌퀴스트」대법원장은『때로는 정치만평이 그 신랄한 성격 때문에 당장에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정치적 묘사가 훨씬 빈곤해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평과 풍자에 의해 미국인의 뇌리에 더욱 선명히 부각된 껑충한 자세의「링컨」,「디어도·루스벨트」의 안경과 이(치), 「프랭클린·루스벨트」의 여송연 등에 대해 애정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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