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유시민 국민청원, 빈 교실 어린이집 논란 재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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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전북 전주의 한 어린이집 아이들이 쌓인 눈 위에서 뛰어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달 전북 전주의 한 어린이집 아이들이 쌓인 눈 위에서 뛰어놀고 있다. [연합뉴스]

초등학교 빈 교실을 국공립어린이집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교육계와 보육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해당 내용을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올리면서 국민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

유시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재이슈화 #보육계 “학생 수 감소, 빈 교실 활용” #교육계 “특수학급, 유치원 신설 예정” #유치원·어린이집 관리 주체 달라 혼란 #전문가들 “유아교육과 보육 통합해야”

  지난 12일 유 전 장관이 제기한 국민청원은 18일 오후 현재 6만7000여명이 동참했다. 그는 “초등학생 수가 계속 감소하고 초등학교의 여유 공간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생기는 초등학교의 여유 공간 일부를, 다시 말해 지금 특활공간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교실의 일부를 어린이집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이 나온 배경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것이었다. 이 법안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대표 발의했다. 어린이집 설립과 운영 근거 등을 담은 영유아보육법에 ‘초등학교 유휴교실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용도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부지 매입과 건축 비용 문제로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사용하자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국공립 어린이집 40% 확대는 국공립 유치원 40% 확대와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관리 주체가 각각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서로 다르다. [중앙포토]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관리 주체가 각각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서로 다르다. [중앙포토]

 그러나 법사위에선 “교육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이 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돌려보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학교는 교육부와 교육감이, 어린이집은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이 관장하는데 국회 보건복지위가 교육부나 교육청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법률을 가결한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성명을 냈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도 “영유아와 함께 생활하는 초등학생의 수업권 침해, 안전관리 문제 등이 우려된다”며 “유휴교실이 생기면 음악실, 미술실, 실과실 등 초등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설 확충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처럼 교육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빈 교실의 어린이집 활용 방안은 물 건너가는 듯 했다. 그러나 대중적 영향력이 큰 유 전 장관이 국민청원을 진행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장은 "법과 제도를 따져 결정돼야 할 문제가 인기투표하듯 진행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중앙포토]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중앙포토]

  그러나 교육부는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 전 작가의 청원이 있던 날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빈 교실이 생기면 우선 유치원을 확대할 계획이어서 어린이집을 위한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어 교육부는 유휴교실 현황(초교 934개, 중고교 783개)을 공개하며 향후 특수학급 마련(2022년까지 850개 이상)과 병설유치원(2022년까지 600개 이상) 증설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유경 교육부 유아정책과장은 “교육부에선 이미 유휴교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모두 수립돼 있어 어린이집 신설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관장하는 복지부는 “신축 비용 부담으로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에 소극적인데, 유휴교실을 활용하면 애로사항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개정안을 지지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 내부에서조차 컨트롤 타워없이 엇박자가 빚어지는 이유는 유아교육(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이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유치원은 교육부 소관인데, 어린이집은 복지부 소관이다 보니 법·제도적 관리 주체 다르고 업무 협력도 잘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까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지원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줄다리기를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유아교육과 보육이 분리된 현 체제 아래선 유휴교실을 어린이집으로 활용하더라도 사고시 책임 소재가 문제된다. 교육부 하유경 과장은 “학교 안 유치원은 학교장이 원장을 겸임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어린이집은 교육청이 아닌 지자체가 관리감독을 하다 보니 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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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도 문제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휴교실은 주로 학생 수가 급감한 농어촌 지역에 많은데 어린이집 수요는 대부분 대도시에 몰려 있다”며 “빈 교실을 어린이집으로 활용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한다 해도 실효성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유보통합이다. 김재철 대변인은 "선진국에선 대부분 교육부가 보육을 맡아서 한다, 장기적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업무를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욱 교수도 "지난 정부에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평가체제, 시설기준 등을 단일화 할 만큼 진도가 꽤 나갔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됐다. 유보통합을 다시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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