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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각하」가「저는·께서」로|노 대통령 취임 후 달라진 것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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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취임 첫날인 25일 하룻동안 노태우 대통령은 여러면에서 전임대통령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취임식의 내용과 절차,사용하는 용어, 각종 의전에서 이른바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보통사람」을 강조하려는 노력이 뚜렷이 드러났다.
우선 취임식을 국회의사당앞 뜰에서 한 것부터가 색다르다. 유신·제5공화국을 거치는 동안 이른바「체육관 대통령」은 대통령과 정통성을 희화화하는 상징이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은『힘든 직선으로 당당히 당선된 대통령은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국민대표의 대의기구인 국회의사당을 행사장으로 직접 지정했다고 한다.
의전·경호상 국가원수가 참석하는 행사를 2만5천여명이나 모인 노천에서 하는 것이 무리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노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취임식장 장식이나 식 진행도 전임 대통령 때 와는 판이했다. 항상 대통령자리는 돌출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뒷줄에 앉는 관례를 깨고 전직대통령, 3부 요인과 나란히 앉았다. 대통령휘장인 봉황도 연대에만 박혔을 뿐 금색수가 놓인 대통령 전용의자는 보이지 않았고 연단뒷벽은 봉황 대신무궁화그림으로 장식했다.
또 노 대통령이 입장할 때『대통령 찬가』를 연주하지 않았으며 대신「정의를 만방에 알린다」는 의미의 국악 『표정만방지곡』을 연주했고 퇴장 때도 국악 취타 곡 반주에 우리가곡『희망의 나라로』를 합창했다.
취임사를 낭독하는 동안 으레 박수부대가 「선도」하던 일장박수가 없어졌으며 군데군데 「마음에서 우러나는」박수가 산발적으로 나와 종전의「일사 불란」과 대조를 이루었다.
초청대상도 유지중심에서 장애자등 보통사람 위주로 바뀌었고 지정좌석에 「꼼짝못하고」앉아 있어야하는 경직성을 탈피, 주변사람들과 잡담도 하고 몸도 뒤틀수있게 해주었다.
이날 저녁 국회 로턴더 홀에서 열린 경축연회도 마찬가지였다. 입장 때『대통령 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는 요란한 안내방송이 사라졌고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본 입구 쪽 사람들이 박수를 치자 참석자들이 비로소 대통령 입장을 알 정도였다.
노대통령이 한바퀴 돌면서 악수를 하는 동안 경호원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접근을 제지하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통로를 터 주는데 그쳤다.
연회장의 치장도 극히 단조롭고 검소했으며 대통령 전용 카피트나 봉황무늬도 일체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의「위업」을 요란한 형용사로 묘사하는 건배제의도 없었고 노 대통령은 「다케시타」일본수상 등과 헤드테이블에서 조용조용 담소한 후 참석자들과의 악수에 더 신경을 썼다.
노 대통령이 워낙 정성껏, 가급적 많은 사람과 악수를 하려 하자『선거를 치러 본 사람이 다르다』는 말이 도처에서 나왔다.
국립묘지·국회방문 때의 거리경호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노 대통령 일행이 통행하는 동안 교통신호만 계속「파란 불」이 켜지게 조치했을 뿐 도로의 차량통행을 일체 통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통령 차 앞에 대형트럭과 청소차가 가기도 하고 2차선을 달리던 택시와 자가용도 몇 대의 외제차가 지나간 뒤에야 대통령 행차임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이 때문에 국립묘지 도착시간이 5분 가량 늦어졌는데 경호관계자들은『오늘은 공휴일이라 그렇지만 평일의 러시아워 때는 걱정』이라며 더욱 긴장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나 즉석연설에서「본인」대신 시종『저는…』이라고 했고 각종 행사에서 「각하」라는 말을 첫날부터 솔선해 추방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식과 경축연에서 김정렬 전 총리로 하여금 자신을 지칭할 때『대통령께서』라고만 하게 했고 신임각료와 청와대수석들에게 임명장을 줄 때도 사회자인 손관호 총무처차관에게 「각하」라는 말을 못쓰게 했다.
또 노 대통령은 장관들이 일렬로 부동자세로 서 왼손엔 선서문을 들고 오른손을 세운 채 낭독하던 선서문 낭독 절차를 생략케 했다.
임명장을 줄때 대통령은 한손으로 주고, 받는쪽은 두손으로 받게하는 관례를 뒤집고 노대통령 자신이 두손으로 주고, 두손으로 받았다.
또 임명장을 줄때 받는 사람과의 거리를 좁혀 대통령은 빳빳이 서있고 받는 사람은 허리를 잔뜩 구부리는 사진이 아예 못나가게 했다.
취임첫날 청와대를 방문한「다케시타」일본수상 일행에게 「방문」표찰을 패용 치 않게 배려한 것을 시발로 앞으로는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빈이나 고위관료들에게 출입증 패용을 시키지 않을 작정이다.
이 조그만 변화들이 과연 어디까지 더 확대되고 발전될 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출발의 상징으로 국민들에게 비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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