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말라""치마 입으라" 발언해 징계받은 상사에 법원 판단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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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습니다. [중앙포토]

폭언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습니다. [중앙포토]

“(박물관) 근무 중 임신하지 말라” “꺼져”
지난 3월쯤 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문화재단 감사실 쪽에 민원이 접수됐다. 경기도 내 김모(53·여) 박물관장이 부하직원에게 부당지시·폭언을 하고 남자직원을 성희롱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감사에 나선 경기문화재단은 김 관장이 부하직원들에게 “근무 중에 임신하지 말라” “치마가 어울리니 (치마를) 입어라” 등의 부당한 지시를 한 것을 확인했다.

경기문화재단, 감사벌여 감봉3개월 중징계 #재심서 징계 감경 안되자 법원에 민사제기 #法 "직원의 인격과 자주성 등 존중하지 않아"

또 직원의 허벅지를 건드리면서 “뚱뚱해” 등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도 한 것으로 봤다. 이밖에 김 관장이 직원들에게 “꺼져” “(윗사람 말에) 토 달지 마” 등 폭언한 것을 듣거나 봤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감사과정서 김 관장이 한 남자직원의 엉덩이에 손을 댄 성희롱 사실도 드러났다.

[사진 경기문화재단]

[사진 경기문화재단]

한 달 뒤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김 관장은 정직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관리자로서 언행과 조직관리 능력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 이런 처분이 내려졌다고 한다. 다만 김 관장이 표창 수상 기록이 있어 감봉 3개월로 징계가 감경됐다.

이에 대해 김 관장은 징계처분이 부당하다며 재심을 요청했다. 재심결과는 같았고, 김 관장은 법원에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사이 김 관장의 2년 임기는 만료됐다. 수원지법 민사13부는 김 전 관장이 경기문화재단을 상대로 낸 징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수원지법 전경 [사진 수원지법 홈페이지 캡처]

수원지법 전경 [사진 수원지법 홈페이지 캡처]

재판부의 판단은 이랬다. 김 전 관장의 행위가 직원의 인격과 자주성 등을 존중할 것을 규정하는 취업규칙을 위반해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감봉 3개월의 징계가 징계양정규정을 위반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공기관의 기관장 직무를 수행하는 자는 적극적으로 성희롱을 예방하고 모성이 보호받는 근무환경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면서 “하지만 스스로 이에 저촉되는 발언과 행동을 한 점 등에 비춰볼 때 이 사건 징계처분은 적정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김 전 관장은 재판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그는 재심으로 이뤄진 두 번째 인사위원회 구성원들이 첫 인사위 때와 같다며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감사과정에서 다수의 직원이 폭언과 성차별적 발언을 들었다고 진술한 점, 김 전 관장이 엉덩이를 친 남자 직원이 당시 상황에 대해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작성했지만 김 전 관장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김씨가 주장한 재심의 절차상 문제에 대해서는 "재심을 위한 인사위원회 구성에 관해 재단이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도 않아 재심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전 관장은 법원에 자신의 후임자를 뽑는 재단의 공모를 금지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된 바 있다.

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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