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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이 보낸 공개 초대장 … 북 응답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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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렉스 틸러슨. [로이터=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로이터=연합뉴스]

렉스 틸러슨(사진) 미국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이 대화하길 원하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가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처음 나온 ‘비핵화’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이다.

조건 없는 선 대화, 후 비핵화 골자 #미 외교안보라인 대북 기조 바뀐 듯 #“외교 실패 땐 매티스 국방 나설 것” #틸러슨, 대북 군사적 해법 경고도 #미·중 ‘북 급변사태’ 비밀논의 공개 #북한 향한 대화 압박 의도인 듯

틸러슨 장관은 이날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준비가 돼야 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 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언론에선 “틸러슨 장관의 외교적 해법의 개막”(로이터 통신), “북한을 향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초대장”(CNN 방송)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제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당장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대해 “북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는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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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처럼 대북 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파격적인 제안을 틸러슨 장관이 독단적으로 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북·미 관계의 모종의 변화가 계기가 됐거나 혹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 라인과의 협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유엔 특사로 방북했다 돌아온 미국 외교관 출신 제프리 펠트먼 사무차장이 같은 날 뉴욕 기자회견에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북한의 문을 살짝 열어놓고 왔다는 것이며 이제 시작”이라고 밝힌 것이 이 같은 관측과 무관치 않다.

틸러슨 장관의 이날 제안은 ‘자유로운 선(先) 대화→후(後) 비핵화 협상’이라는 일종의 2단계 협상이 골자다. 그는 “우리가 최소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엔 앞으로 나아갈 목표를 향한 로드맵을 펼쳐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틸러슨은 탐색을 위한 대화가 필요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은 그의 아버지(김정일)나 할아버지(김일성)와 분명히 다르다”면서 “나는 먼저 협상 상대방이 누군지, 그들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화의 가능성을 여는 중요한 진전”이라면서도 성패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반응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은 중앙일보에 “틸러슨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 간 긴장관계에 대한 소문들이 워싱턴에 파다한 상황에서 (틸러슨 장관이) 행정부를 대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 안보소장은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과 협상으로 가는 길엔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나는 첫 번째 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외교가 실패로 끝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차례가 된다면 그는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외교가 작동하지 않을 때는 군사적 해법이 기다리고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한편 틸러슨 장관은 “북한 내부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장 중요한 일은 북한의 핵무기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라며 “원하지 않는 이들의 손에 (핵무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안에 대해 중국 인사들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 고위 관리들이 북한 급변 사태 시 핵무기 안전 확보, 대량 난민 관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시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틸러슨 장관은 자신과 매티스 국방장관,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과 왕이(王毅) 외교부장,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 팡펑후이(房峰輝) 총참모장 등이 외교안보 전략 대화에서 북한 급변 사태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단 북한 내부 급변사태와 관련해 “(미군이) 군사분계선(DMZ)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38선 이남으로 후퇴할 것이라고 중국에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3월) 첫 번째 아시아 순방에서 북 정권교체, 정권붕괴, 미군의 DMZ 이북 파견과 한반도 통일 가속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4No 정책을 밝혔다”면서 “중국 측에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조건을 불문하고 38선 이남 후퇴를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틸러슨이 미·중 간 비밀 논의를 공개한 것은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로도 분석된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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