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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세상] “쫓겨날까 봐 남편 말 거역 못해요” 가난 때문에 생겨난 ‘어린 엄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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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루시(17)가 집에서 한 살배기 딸 마이켈라를 돌보고 있다. 시에라리온에 사는 루시는 열두 살에 결혼해 두 아이(다섯 살, 한 살), 남편·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루시(17)가 집에서 한 살배기 딸 마이켈라를 돌보고 있다. 시에라리온에 사는 루시는 열두 살에 결혼해 두 아이(다섯 살, 한 살), 남편·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지난 6일 인터뷰 도중 17세의 루시 품에서 딸 마이켈라(1)가 칭얼댔다. 루시는 익숙한 듯 반팔 티셔츠를 당겨 가슴을 드러낸 뒤 수유를 시작했다. 늘어진 티셔츠의 목 부분은 ‘어린 엄마’ 루시의 상황을 보여줬다.

18세 이하 조혼율 39% 시에라리온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카투타운이 루시가 사는 마을이다. 루시는 이곳에서 남편 마이클(25)과 아들 데이비드(5), 딸 마이켈라, 그리고 시부모·시동생 등과 함께 산다. 결혼·임신과 동시에 학교를 그만둔 루시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육아는 물론 모든 집안일을 감당하고 있다. 야자주(Palm wine) 유통업을 하는 남편은 ‘결혼해 애까지 딸린 여자가 살림이나 하지, 학교에 다녀 무엇하느냐’고 했다. 집안의 모든 결정은 남편 몫이었다. 루시가 하는 행동, 먹는 음식까지 남편이 정했다. 루시는 “집에서 쫓겨날까 봐 한 번도 남편의 결정이나 요구에 노(No)라고 대답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에라리온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8세 이하 여성 아동의 조혼율은 39%에 달한다. 지난해 세이브더칠드런과 월드비전, 플랜 인터내셔널 등이 시에라리온 9개 지역의 7~18세 아동 11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아동 중 91%가 ‘또래 소녀 가운데 임신한 소녀의 숫자가 에볼라 사태 이전보다 더 늘었다’고 답했다. 단체들은 “에볼라로 가족과 친척이 목숨을 잃고 이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아이들은 성매매·조혼 등을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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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임신과 결혼 풍습은 마을 내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5일 프리타운 인근 마을인 바사타운에 사는 아이들을 만났다. 마을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아담세이(13)는 “주위에 결혼을 일찍해 학업을 중단한 친구들이 꽤 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일찍 결혼하라고 할까 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커다란 도화지에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이유’에 대해 적었다. ‘등굣길에 뱀이 많이 나와요’ ‘학교 근처 도박장 사람들이 게임을 하러 오라며 꼬셔요’ ‘차가 많이 지나다녀서 위험해요’ 등 다양한 이유가 나왔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배가 잔뜩 부은 여성을 크게 그려넣었다. 집 모양의 그림을 그려넣고 ‘비밀 회당(secret society house)’이라고 적은 아이도 있었다. 회당은 시에라리온의 일부 부족이 여전히 여아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여성 할례(성기 절제)가 이뤄지는 곳이다.

아프리카 여아 학교보내기 캠페인 ‘스쿨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국제 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지난해 시에라리온 지역사회에 120개 아동·부모 클럽 등을 조직해 이들에게 성평등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김현주 세이브더칠드런 해외사업팀장은 “부모와 지역사회의 의식이 바뀌어야 이곳 여자 아이들이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에라리온=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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