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4명 미국서 징역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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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반도체의 영업 담당 임직원 4명이 D램 가격담합 행위로 미국에서 징역형을 받게 됐다. 미국 법무부는 1일(현지시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하이닉스의 김모 전무 등 4명의 임직원이 D램 가격담합 행위와 관련해 유죄를 인정하고 미국에서 각각 5~8개월의 징역형을 받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 법무부는 또 "이들 4명의 하이닉스 임직원은 각각 25만 달러(2억4245만원)의 벌금과 미 법무부의 D램 가격담합 조사에 협조하기로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업체가 덤핑 등의 행위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은 적은 있지만, 가격담합으로 개별 임직원이 해외에서 실형을 받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법무부는 "하이닉스 임직원들은 1999년 4월부터 2002년 6월까지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임직원들과 만나 미국의 특정 컴퓨터 제조업체에 납품할 D램 가격을 결정했다"며 "이 같은 담합은 델과 HP.컴팩.IBM.애플.게이트웨이 등의 미국 컴퓨터 업체들의 판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D램 가격담합에는 하이닉스와 함께 삼성전자.인피니온.마이크론.엘피다 등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가 모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미국 업체인 마이크론은 미 법무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해 관련 직원 1명이 6개월 자택연금형만 받았을 뿐 회사는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엘피다.인피니온.삼성전자 등은 각각 8400만~3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인피니온 임직원 4명은 2004년 징역형을 받고 복역했다.

앨버토 곤잘러스 미 법무장관은 이번 조사와 관련해 "국제적인 가격담합으로 미국 기업과 소비자를 기만한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어디서 죄를 지었든지를 가리지 않고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희성 기자

[뉴스 분석] 반도체 마케팅 위축 우려
국제표준 따른 경영해야

하이닉스 반도체 임직원 4명이 D램 가격 담합 행위로 국내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징역을 살게 됐다. 이 중 2명은 현재 국내에 있지만 복역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야 한다. 지금까지 D램 이외 미국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가격을 담합한 전례가 없었던 만큼 관계자에 대한 실형은 생소하고 충격적이다.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관계자들도 미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 내 마케팅 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한국 업체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외국의 견제는 어쩌면 당연하다. 국내 산업계 일각에서는 "반도체 강국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 법무부가 초강경 조치를 취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맞지 않다.

미 법무부의 가격담합에 대한 강력한 처벌 원칙을 감안할 때 한국 업체만을 염두에 둔 의도적인 처벌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가 가격 담합을 이유로 관계자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미 법무부는 반독점법인 셔먼법을 일부 개정해 가격 담합 관계자에 대한 처벌을 징역 3년 이하에서 징역 10년 이하로 대폭 강화했다. 회사에 대한 벌금형만으로는 가격 담합을 뿌리뽑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금석 변호사는 "글로벌스탠더드 시대에는 국적과 소재지에 관계없이 기업인의 불법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국내 기업들도 위상이 높아진 만큼 국제 표준에 맞게 제품을 팔고 경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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