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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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400년 전 백제시대의 도량형(度量衡)이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유명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서오선)에서 오는 21일까지 전시할 예정인 '백제의 도량형' 특별전을 통해서다.

이 박물관의 김규동 학예연구사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대국가의 도량형의 존재가 '삼국사기'등 문헌자료의 기록이 아닌 구체적 실물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고구려.신라의 도량형 연구에도 영향을 미쳐 한반도 고대국가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량형'이란 길이.무게.부피를 측정하는 기구를 총칭하는 말로 사회 제도의 발달 수준을 반영한다. 중국의 첫 통일 왕조인 진나라의 진시황이 행한 첫 사업의 하나가 도량형의 통일이다. 도로 건설 등부터 조그마한 벽돌이나 그릇을 만드는 데까지 도량형을 적용함으로써 통치의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금동대향로'처럼 정교함의 극치를 과시한 백제의 문화 수준에서 당연히 통일적 도량형이 있었으리란 가정에서 이번 특별전은 준비되기 시작했다. 부여 쌍북리에서 발굴된 자(尺)와 목판 도량기, 화지산에서 나온 양기(量器), 그리고 가탑리에서 출토된 '일근(一斤) 새김 거푸집'과 외리에서 나온 무늬벽돌 등 다양한 유물에 대한 조사가 잇따랐다.

처음 발굴 땐 이 유물들이 무엇에 쓴 물건인지 몰랐으나 당시 중국 남북조.당나라의 도량형과 비교해 보는 가운데 도량형 기구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구들로 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능산리 출도 목간(木簡), 그리고 무늬벽돌 등에 적용해 보니 일정한 통일적 규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고대의 유물 하나하나에 도량형이 적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전시회장 입구를 들어서면 잘 알려진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관람객을 맞는다. 하지만 같은 유물이라도 도량형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전혀 새로운 느낌의 위용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서 새로 발굴된 각종 도량형 기구 실물을 당시의 유물들과 나란히 배치해 놓음으로써 그 길이와 부피 등을 어떻게 계측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도량형 연구는 고대 유물의 연대를 가늠하는 과학적 표준을 마련하는 의미도 갖는다.

고대국가의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새로운 권위를 세우기 위해 도량형을 조금씩 변경시키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유물의 연대와 국가간 교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의 남북조 시대와 그를 이은 당나라의 도량형이 차이가 나는 것을 근거로 이번 특별전에선 백제의 대외 관계를 밝혀내기도 했다.

김규동 학예연구사는 "초기인 한성백제 시기엔 후한(後漢)에서 들어온 23㎝ 내외의 자가 사용됐고, 웅진기와 사비기 전반에는 25㎝ 내외의 중국 남북조시대의 자를 썼으며, 사비기 후반에 오면 부여 쌍북리의 자처럼 29.5㎝ 내외의 당나라 자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백제가 중국의 새로운 변화에 매우 발빠르게 대처했었다는 사실이다. 620년대에 시작된 당나라의 척도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백제에도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이번 특별전에선 무령왕릉 출토 은제팔찌에 새겨진 '230주'의 주(主)가 무게 단위인 수(銖)와 관련이 있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또 청주 신봉동 출토의 대형 바리들이 용량 측정용 그릇이었을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모두 도량형을 통해 밝혀내는 잊힌 고대 생활사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여=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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