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빙상, 「세계의 벽」두터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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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의 벽은 한국빙상이 넘보기에는 너무나 두터웠다.
유일한 메달 기대주였던 배기태의 좌절과 함께 한국의 동계올림픽 첫메달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배기태의 성적이 역대대회 참가사상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배기태가 예상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컨디션조절의 실패를 원인으로 들수 있다.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경기당일 피크를 이루도록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배기태는 지난해12월 월드컵대회때 이미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으며 이후 다소하향세에 있었다는 것이다. 배기태는 줄곧 그를 괴롭혀온 발뒤꿈치 아킬레스건 부상이 이 대회 때문에 도져 남모르게 고통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대회 3차대회의 우승으로 마음이 들뜨고 주위에서 거는 과중한 기대로 부담이 컸던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배기태는 또 당초 예상과는 달리 3그룹에 배정돼 5백m출전선수 37명중 끝에서 두번째로 뛰었다.
34명(17개조)이 이미 활주를 끝낸 뒤라 빙질이 좋지 못해 최선의 레이스조건은 아니었다.
배기태를 지도한 박창섭(박창섭)감독이나 현지의 한국임원들은 당초 배기태가 지난해 세계스프린트 선수권대회 성적(16위)에 의해 2그룹에 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지난해 대회와 배기태가 불출전한 올해 대회 성적을 합산, 그룹이 결정되었는데 한국 빙상 관계자들은 경기 바로 전날까지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또한 같은 조 소련「굴라예프」의 플라잉으로 다시 스타트한 것도 불운이었다.
정작 중요한 원인은 바로 한국빙상이 아직 세계대회 입상자를 배출할만큼 제반여건이 성숙지 못하다는데에 있는 것으로 할 것 같다.
한국빙상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배기태가 이정도 성적이라도 냈다는 사실이 오히려 대견스러울 정도다.
한국빙상은 우선 시설 면에서 실외링크 1개, 실내링크2개밖에 갖고있지 않다.
수백개의 천연·인공링크를 갖고있는 외국과는 비교도 안된다. 등록선수라고 해봤자 2백여명에 불과하다.
배기태의 경우만 해도 국내에선 같이 연습해줄만한 기량의 선수도 찾기 힘들어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는 훈련이 안될 정도다.
한국기록은 세계와는 아직도 큰 격차가 있다. 이번의 기록을 보아도 「우베·마이」에 0·45초가 뒤진다.
모든 일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배에게 금메달을 기대한 것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한국빙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캘거리=이민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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