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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제대로 된 구조조정 가능할까...새 구조조정 방향에 우려 제기

중앙일보

입력

김동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했다. 강정현 기자 /171208

김동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했다. 강정현 기자 /171208

지역 의견 대폭 반영 등 ‘성동조선 생존’ 무게 둔 내용 다수 #기존 컨설팅 버리고 새 외부 컨설팅...대우조선해양의 재판 #전문가, “적기 구조조정 않으면 경제에 더 큰 타격” #“노동친화적 현 정부, 제대로 된 구조조정 어려울 듯” 분석도

문재인 정부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을까. 8일 발표된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에 대해 “성동조선해양 등을 살려주기 위한 방안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현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 정부에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8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9개 정부 부처 명의로 발표된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추진방향’에는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성동조선이나 STX 조선의 구조조정 및 존폐에 대한 구체적 명시는 없었다. 하지만 행간에는 ‘중소 조선사 생존’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히 많이 담겨 있다.

성동조선해양의 경남 통영시 조선소 [연합뉴스]

성동조선해양의 경남 통영시 조선소 [연합뉴스]

먼저 주목되는 건 산업적 측면과 금융논리를 균형 있게 반영하겠다는 부분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보도자료에서 “기존의 금융 논리 중심의 구조조정에서는 산업생태계 등 산업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다”고 명시했다. 한진해운 퇴출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청산가치가 계속 기업가치보다 더 높다”는 이유로 지난해 한진해운을 퇴출했다. 국내 1위, 세계 7위의 대형 선사로서의 상징성과 부산·경남 지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등의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는 원칙을 고수했다.

성동조선 역시 한진해운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내용의 EY한영 실사보고서 등을 근거로 성동조선은 더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굳힌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논리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다”는 새 구조조정 원칙이 나왔다는 건 금융위 입장만을 수용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구조조정 과정에 지역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내용은 성동조선 등에 더욱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기업의 존망이 지역의 존망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상황에서 지역 여론이 ‘조선소 청산 반대’로 모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실제 성동조선의 소재지인 경남 통영시와 STX 조선해양이 위치한 경남 창원시에서는 두 업체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골리앗 크레인' 주변에 선박 건조용 자재들이 쌓여 있는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골리앗 크레인' 주변에 선박 건조용 자재들이 쌓여 있는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두 업체를 대상으로 외부 컨설팅을 다시 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대우조선해양이 컨설팅을 새로 받은 뒤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선업 컨설팅을 의뢰받은 맥킨지는 “‘빅3’ 중 대우조선의 독자생존이 가장 힘들다. 매각 또는 분할해서 ‘빅2’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선 업계가 발칵 뒤집히자 정부는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는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격하한 뒤 2017년 1월 삼정KPMG에 새롭게 컨설팅을 의뢰했다. 그리고 삼정KPMG 실사보고서를 근거로 삼아 대우조선에 정책자금 신규지원을 결정했고, 그 결과 대우조선은 생존할 수 있었다.

성동조선에 대해서도 이미 EY한영의 실사보고서가 있지만, 채권단과 정부는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주관으로 성동조선과 STX조선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컨설팅을 새로 하기로 결정했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컨설팅에는 2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져 내년 1월 말이나 2월 초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구조조정 방향

새로운 구조조정 방향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 경제와 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필수적인데, 이번 구조조정 원칙이 이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계기업은 3126개로 2012년 2794개보다 12% 정도 늘어났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이 금융 이자에도 못 미치는 기업으로 흔히 ‘좀비기업’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한계기업에 금융기관이 빌려준 자금만 121조원에 이른다. 이런 기업들을 과감하게 퇴출해야 이 자금이 새로운 혁신기업들로 흘러들어가 경제에 새 살이 돋아날 수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구조조정 원칙은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결국은 성동조선을 살리겠다는 얘기같다 ”며 “회생가치가 없다면 과감하게 정리해야 새로운 혁신기업들이 태어나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새 정부 들어 정치권 인사들이 조선업 침체로 어려운 지역을 찾아가 사실상 구조조정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한 상황”이라며 “노동계의 힘이 세진 상황에서 현 정부에 엄격한 구조조정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표 명예교수는 이어 “조금 더 기다리면 조선업·해운업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며 “조선·해운업을 이대로 놔두면 계속 곪아서 염증이 더 커지고, 결국 그게 터지면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 논리뿐 아니라 산업적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의 방향 자체는 맞다.”라며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역과의 소통을 늘리겠다는 건 향후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하남현 기자, 한애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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