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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시의 생명 예찬, 조정래 대하소설 씨앗 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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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08면

가족문학관 인근 조각 공원의 동상. 하늘로 오르려 싸우는 두 마리의 용 이야기인 고흥 영남면의 ‘용바위 전설’을 표현했다.

가족문학관 인근 조각 공원의 동상. 하늘로 오르려 싸우는 두 마리의 용 이야기인 고흥 영남면의 ‘용바위 전설’을 표현했다.

문학관 밖을 거닐고 있는 조정래·김초혜 부부

문학관 밖을 거닐고 있는 조정래·김초혜 부부

문학관 입구에 선 소설가 조정래(오른쪽)·시인 김초혜 부부

문학관 입구에 선 소설가 조정래(오른쪽)·시인 김초혜 부부

‘판잣집/ 한 세대가/ 또 어떻게/ 밤을 새나/ 전등이 얼어붙고/ 별빛도 떠는/ 이 밤./ (…) 건래야/ 잘 자거라/ 추워서 못 자겠나/ 아버지 우와기/ 한 자락이 그러겄다./ 의젓한 요, 이불 한 채/ 내년 요때는/ 마련하마.’ (시 ‘영하 18도’)

전남 고흥에 문 연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을 가다

아버지는 시인이었다. 추운 겨울 판잣집에서 자신의 외투를 덮고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년에는 요와 이불을 사 주겠노라 시로 다짐하던 분이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문학을 생명처럼 붙들고 살아온 아버지, 세월이 지나며 아버지의 시가 잊혀져 가는 게 아들은 못내 안타까웠다. 지난 달 30일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산 자락에 문을 연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은 이런 아버지를 떠올리면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흘렀다”는 아들의 회한과 사랑이 빚어낸 공간이다.

전남 고흥은 『자정의 지구』 『의상대 해돋이』 등의 시조집을 발간하고, ‘시조문학’을 창간해 이끌어 온 시조시인 철운(鐵雲) 조종현(1906∼1989)의 고향이다. 이 지역 출신인 철운 선생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5년 전부터 계속해 온 고흥군은 문학관 건립을 준비하며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쓴 아들 조정래(74) 소설가와 『사랑굿』 『어머니』 등을 쓴 며느리 김초혜(74) 시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세 문인의 흔적이 함께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가족문학관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시조 ‘백묵가루에’ 육필 원고

시조 ‘백묵가루에’ 육필 원고

아버지에 대해 조정래 작가가 쓴 글

아버지에 대해 조정래 작가가 쓴 글

『조종현 전집』(소명출판) 1, 2권

『조종현 전집』(소명출판) 1, 2권

서예가 홍신표씨가 조종현 스님의 법랍(法臘) 61년을 기념해 선물한 편액

서예가 홍신표씨가 조종현 스님의 법랍(法臘) 61년을 기념해 선물한 편액

문학관 인근에 있는 ‘고흥분청문화박물관’

문학관 인근에 있는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지난달 30일, KTX 광주송정역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고흥군 두원면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 건 널찍한 앞마당에 자리를 잡고 선 다양한 조각품들이다. 이날 개관식을 가진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은 지난 10월 말 문을 연 ‘고흥분청문화박물관’ 부지 내에 들어섰다. 얽혀 있는 용 두 마리를 향해 한 사내가 기운차게 활 시위를 당기는 형상의 동상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흥 영남면에 있는 용추와 용바위에 얽힌 전설을 담은 작품이에요. 이 곳에 놓인 조각들은 모두 고흥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박물관 내 조각 공원 조성에 자문을 한 이용덕 서울대 미대 조소과 교수의 설명이다.

조각 공원의 언덕을 오르다 보면 오른 편, 살짝 내려앉은 공간에 지어진 가족문학관이 보인다.  456㎡(약 138평) 규모의 1층 짜리 건물이다.

문학관이 문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계획은 2015년 일찌감치 시작됐지만, 조정래·김초혜 작가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지난했던 탓이다. “가족문학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듣고 아내가 크게 반대했습니다. 이미 내 작품을 테마로 한 아리랑문학관(전북 김제)과 태백산맥문학관(전남 보성)이 있는데 또 문학관을 지으면 ‘문학관에 미친 사람’이란 욕을 먹을 거라고 했죠. 자신도 시아버지와 남편 잘 만나 문학관을 갖게 된 시인이 되고 싶진 않다고 했습니다.” 조정래 작가가 말했다. 하지만 박병종 고흥군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열의가 이들을 움직였다. “철운 선생의 작품을 알리는 좋은 기회이며, 한국 문단을 이끈 세 사람이 가족이란 사실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이들을 꾸준히 설득했다.

아리랑문학관(전북 김제) 개관 1주년 기념 강연 원고

아리랑문학관(전북 김제) 개관 1주년 기념 강연 원고

장편소설 『허수아비춤』 육필 원고

장편소설 『허수아비춤』 육필 원고

장편소설 『허수아비춤』 파지

장편소설 『허수아비춤』 파지

위인전 『신채호』 육필 원고

위인전 『신채호』 육필 원고

조종현 문학관: 시집과 육필원고 빼곡

조종현 문학관

조종현 문학관

세 사람과 관련된 1274점의 자료로 꾸며진 문학관 내부는 3개의 독립된 문학관이 동선을 따라 이어지도록 구성됐다. 주인공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조종현 시인이다. 1906년 고흥 남양면 망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6살에 순천 선암사로 출가했다. 만해 한용운과 함께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민당’을 결성해 활동했다. 28세에 결혼해 대처승이 됐고, 해방 후엔 환속해 서울 보성고 등에서 국어교사로 일했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널리 알려진 시조 ‘의상대 해돋이’가 그의 대표작이다. ‘나도 푯말이 되어 너랑 같이 살고 싶다/ 별 총총 밤이 드면 노래하고 춤도 추랴/ 철 따라 멧새랑 같이 골 속 골 속 울어도 보고(…)’.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는 1975년 편찬된 국정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문학관에는 조종현 시인이 생전에 발간한 시집과 육필 원고, 불교 경전 및 고승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등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가족문학관인 만큼 두 손녀딸의 이름을 지어 적어준 붓글씨, 아들들에게 내린 휘호 등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도 볼 수 있다. 둘째 아들인 조정래 작가에게 남긴 휘호는 ‘謙虛(겸허)’였다. 아버지의 붓글씨 앞에 선 조정래 작가가 크게 웃는다. “내가 잘난 척 할까 봐 걱정이 많으셨나 봐. 지금도 내가 조금 우쭐해 하면 아내가 말해요. 여보, 아버님이 ‘겸허’하라 하셨잖아.”

조정래 문학관: 원고지 작업의 흔적들

조정래 문학관

조정래 문학관

이어지는 소설가 조정래 문학관은 비교적 단출하다. 이미 문을 연 태백산맥·아리랑문학관과 차별화하기 위해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보여주는 전시품으로 꾸며졌다. 『황토』 『불놀이』등 초기 작품들을 비롯해 작가의 책상에 놓여있던 필통과 필기구, 자료를 누르기 위해 사용된 크고 작은 문진들, 손에 마비가 오는 걸 막기 위해 늘 손에 쥐고 있다는 호두 모양의 가래 등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았다.

그는 지금도 컴퓨터나 휴대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원고지에 글을 쓴다. “문장의 밀도감, 긴박성, 탄력 등이 손으로 적어 내려가는 ‘원시 노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구에는 그가 평생 문학을 해 오며 수없이 되뇌었던 잠언이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다.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노력 없는 재능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과 같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 하나는 나와 남을 비교해 가며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김초혜 문학관: 직접 붓글씨로 쓴 시 세계

김초혜 문학관

김초혜 문학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조정래·김초혜 부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조정래·김초혜 부부

군대에 간 아들에게 쓴 조정래·김초혜 부부의 위문 편지

군대에 간 아들에게 쓴 조정래·김초혜 부부의 위문 편지

이 곳을 나와 시인 김초혜 문학관에 들어선다. 『떠돌이 별』,『사랑굿』시리즈, 『어머니』 등 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시집을 재회하는 기쁨이 특별하다. 시인이 직접 붓글씨로 쓴 자신의 시와 육필 원고는 물론, ‘스타 시인’으로 수많은 매체와 가진 인터뷰 기사, 본인이 직접 인터뷰어로 나서 유명 인사들을 만났던 기록 등이 전시장을 화사하게 채우고 있다.

자신의 첫 문학관이지만, 개막식에서도 김초혜 시인은 말을 아꼈다. “문학관이 만들어졌다는 뿌듯함보다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시를 한 편 더 쓰고 싶은 열망이 훨씬 크다”고 했다. 시아버지 조종현 시인은 며느리가 새 시집을 발표하면 “애썼다. 수고했다”고 누구보다 기뻐하며 따뜻하게 격려했다. 시를 쓰는 선후배였지만 서로의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조언하거나 평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문학관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소설가 김훈

문학관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소설가 김훈

이날 열린 개막식엔 조정래 작가와 30여 년 뜨거운 인연을 이어 온 소설가 김훈이 참석했다. 그는 축사에서 세 사람의 문학 세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조종현 선생의 시는 인간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조정래 대하 소설의 씨앗이 바로 여기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 사랑의 정신은 김초혜 선생님의 시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죠.”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법일 스님’이 아버지 조종현 선생을 모델로 한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조정래 작가는 “아버지가 『태백산맥』 완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하늘에서 가족문학관을 보시면 ‘자식 키운 보람 있네’하고 웃으실 것 같다”고 했다.

문학관 근처로 조정래·김초혜 작가의 한옥 집필실이 내년 5월 완공된다. 조 작가는 2019년 완간 예정인 3권 짜리 소설 『천 년의 질문』을 끝내고 나면, 매월 마지막 주 김초혜 시인과 남도에 내려와 ‘가족문학관’과 ‘태백산맥 문학관’ ‘아리랑 문학관’ 을 순회하며 독자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했다. “작가로서 열심히 글을 쓰고 독자들과 문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귀한 세금으로 문학관을 지어준 데 보답하는 길이겠죠. 말년엔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 글을 쓰며 일생을 마칠 생각입니다.”

고흥(전남)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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