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의 돈봉투 만찬 무죄 … 군기잡기 희생양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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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법원이 어제 이른바 법무부·검찰 간 ‘돈봉투 만찬’ 사건에 연루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아 온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의 결론만을 놓고 본다면 내부 징계 사안에 불과한 일을 검찰의 특수활동비가 남용된 공직 기강 문란 사건으로 확대시켜 형사 처벌까지 시도하다 법원의 제지를 받은 격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소 6개월 만에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상징하던 사건이 ‘정권 차원의 검찰 길들이기를 위해 희생양을 만든 게 아니냐’는 뒷말을 남기게 된 것이다. 크게 과장된 것으로 결론 난 ‘공관병 학대’ 논란의 박찬주 대장 건도 마찬가지였다. 사드 추가 배치 보고 누락을 문제 삼아 국방부 군기를 잡았던 사안도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었다.

검찰은 “이 전 지검장이 만찬 자리에서 법무부 과장 2명에게 총액 109만원 상당을 제공해 김영란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돈봉투와 식사비를 분리해 법위반 여부를 엄격히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올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검찰이 개혁 대상 1순위”라고 선언한 뒤 돈봉투 만찬 사건이 터졌다. 이 전 지검장이 물러난 자리에 ‘항명’ 파동 주역 윤석열 지검장이 전격 발탁되는 등 검찰 개혁의 신호탄이 됐다. 이번 무죄 선고를 계기로 당국은 정권 입맛에 맞춰 짜맞추기 감찰과 무리한 기소를 한 게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문무일 검찰총장 흔들기도 우려스럽다. 문 총장이 적폐 수사를 연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하자 청와대와 여당 원내대표가 나서 ‘계속 수사’를 압박하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이러니 ‘문무일 패싱’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말로는 검찰 수사권 독립을 외치면서 여전히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여기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