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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꼼수와 짬짜미 예산안 후폭풍 … 이런 게 야당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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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어제 “국민의당은 위장 야당”이라고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짬짜미’를 비판했다. “야당인 척하면서 뒷거래로 지역 예산을 챙기고 막판에 가선 여당과 같은 편이 돼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대체로 맞는 주장이다. 내년도 예산안 통과엔 국민의당 협조가 크게 작용했다. 그 과정에서 새정치와 제3세력을 내세운 국민의당은 입만 열면 탈피하겠다던 밀실 흥정과 표리부동의 구태를 되풀이했다.

‘국민의당은 위장야당’ 주장 맞지만 #한국당도 보수당의 존재감 못 지켜 #예산 못 막은 당 지도부가 책임질 일

국민의당은 그동안 공무원 증원 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 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보전용 세금에 손들어 줬다. 그 대신 경제성 논란이 많은 호남KTX 무안공항 경유 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예산과 직접 관계없는 선거구제 개편 추진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이 바람에 호남고속철도는 직선에서 크게 우회하는 ‘ㄷ’자 방향으로 꺾이고 1조원 이상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게 됐다.

지방선거를 앞둔 의원들이야 지역구에 자신의 능력을 선전하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사회 전체적으론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왜곡이 벌어졌다. 정부 정책의 무리한 부분을 견제하고 조정하라고 야당이 있다. 그럼에도 캐스팅보트를 쥔 입지를 내세워 겉으론 반대하고 뒤에선 지역 민원을 챙겼다니 예산안을 정략에 이용한 대표 사례다. 합리와 상식의 정치를 내세운 모습과 거리가 멀다.

문제는 홍 대표의 말이 먹힐 정도로 자유한국당은 최선을 다했느냐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공무원 증원은 9475명 늘리는 걸로 결론났지만 우선 숫자 자체가 주먹구구다. 산술 평균에 반올림 꼼수가 결합된 숫자라고 한다. 일자리 안정기금은 내년만이 아니라 내년 이후에도 계속되게 됐다. 전 세계가 인하 경쟁인 법인세도 우리만 역주행이다.

보수 야당으로선 반드시 막아냈어야 할 예산안이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116명이나 되는 한국당은 예산안 합의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100표 차로 통과된 법인세법은 한국당이 참석했다면 부결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전략 부재에 완벽한 무능으로 ‘한국당 패싱’이란 조롱을 자처한 한국당이다. 그럼에도 국민의당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건 무기력하고 비겁한 일이다. 물론 나라 예산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만든 국민의당은 ‘민주당 2중대’ 비난을 들을 만하다. 이제라도 어떤 가치와 노선을 지향하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게 공당의 도리다. 하지만 보수 정당으로서 당의 정체성을 지켜내지 못한 한국당은 당 지도부가 크게 반성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도 내부 정치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남 탓만 하는 한국당이다. 야당이 강해야 정치가 건강해지는데 ‘잘못된 합의’에 무기력 야당이니 나라 살림도, 정치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