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메거 D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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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반도체는 흔히 「마법의 돌」이라고 한다. 손톱 크기의 작고 엷은 돌 판이 사람처럼 기억하고 말하고 글도 쓰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램프에서 나오는 충실한 종처럼 마법의 돌 재주는 못하는 짓이 없다.
마법의 돌 자체가 세월이 갈수록 재주가 비상해지는 것도 놀랍다.
원조인 트랜지스터가 처음 개발된 것이 1947년, 이어 최초의 IC (집적회로)가 출현한 것이 59년이었다.
74년 1킬로비트 급 LSI 메모리가 등장하면서 점차 집적화 속도가 가속돼 64킬로비트, 84년 엔 1메거 비트가 탄생했다.
1 메거 비트의 성공이후 1년도 안된 86년 2월에는 4메거 비트 짜리 시작품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가면 20세기 중에 1백 메거 급 ULSI (극초LSI)가 탄생하리란 예상이다.
벌써 일본과 미국은 4메거 D램 급의 양산을 준비하고 있고 특히 일본은 그 다음 단계인 16메거D램 개발에 성공하고 있다.
그처럼 눈부시게 돌아가는 반도체 개발경쟁 세계에 우리가 4메거D램 개발 성공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자랑스럽다.
4메거D램 반도체는 새끼 손톱크기(가로 6·5mm, 세로 18mm)의 엷은 돌판 위에 4백 만개의 세균 같은 소자를 심어 알파베트 51만2천자를 기억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 것이다. 신문 32 페이지 분량이니 그야말로 마술이다.
그런 수준의 기술은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유럽의 2대 전기 메이커인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서독의 지멘스가 공동프로젝트로 올해 4메거D램을 양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양국정부가 89년까지 55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 미일과 대등한 반도체 개발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자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경쟁은 기술개발의 차원뿐 아니라 특허권분쟁, 무역분쟁에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대응노력이 더 절실해 지고 있다.
마법의 돌을 지키고 멋지게 부리기까지 「알라딘」의 고난과 파란도 적지 않았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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