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조상 모시기'] 주부들 "제사 부담 서로 나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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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식.절차.법도 등을 생명처럼 중시하는 제사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돌아가신 날이 각각 다른 부모 제사를 한번에 모시는가 하면 서양 음식이 상에 오르는 '퓨전 제사상'까지 등장하고 있다. 제사의 부담을 떠맡고 있는 주부들은 대체로 환영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유학자들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할 만큼 비판적이다.

◇'합쳐서 하고 번갈아 하고…'=전업주부인 이경자(가명.45.서울 삼성동)씨는 지난달 18일 시조부의 제사를 지내면서 10월에 있는 시조모의 제사도 함께 지냈다.

내년부터는 시부모 제사도 합쳐서 지낼 계획이다. 이씨는 "올 설날 가족회의 때 남편과 시집식구들도 흔쾌히 동의했다"며 "정성을 더 쏟고 제사 음식도 많이 차리지만 부담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사업에 종사하는 이창화(39.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조부모와 부모님 제사를 3형제가 번갈아 가며 지내고 있다. 벌써 3년 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차남인 이씨는 "제사 때 가족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고 말했다.

제사를 아예 절에 위탁하는 가정도 많아졌다. 제사를 대행해 주는 인천의 용화선원 관계자는 "매일 20~30가정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며 "제사 한번에 2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에서 한복집을 운영하는 함모(45)씨는 "고객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제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주부가 많다"며 "드러내지 않을 뿐, 제사를 줄거나 형제 간에 역할을 나누는 집이 의외로 많아 종종 놀라곤 한다"고 세태를 전했다.

제사 때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가정도 있다. 주부 이연자(57.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씨는 남동생 집에 제사를 모시러 갔다가 선친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선친이 생전에 자신의 살아 온 얘기며 자식.손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녹음해 뒀던 테이프를 틀어 놓았던 것.

◇"서양 음식도 맛보세요"=제사 음식도 많이 달라졌다. 제사음식 전문 배달 업체들로부터 주문해 제사상을 차리거나 이국적인(?) '퓨전 제사상'을 차리는 가정도 있다.

주부 하모(41.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큰 집 제사 때 동서가 떡 대신 피자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아이들이 좋아하고 돌아가신 분도 새로운 음식을 한번 맛보게 하면 좋지 않느냐고 해 온 가족이 웃었다"고 말했다.

◇뭐라해도 마음이 중요=달라지는 제사 문화는 시대에 부응하는 것일까, 아니면 제사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이승관 성균관 전례위원장은 "부모 제사를 한꺼번에 모셔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한다.

이위원장은 "제사란 돌아가신 분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모시는 것인데 부모님 제사를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은 제사의 의미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정 형편에 따라 조부모 이상의 조상은 제사를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위원장의 견해. 제사를 모실 때는 술과 과일.포 등 세가지만 갖추고 정성과 공경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내면 훌륭한 제사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균관 교육원 최병철 원장의 견해는 좀 다르다. 최원장은 "정성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융통성을 발휘해 각 가정의 사정에 따라 모시는 게 옳다"고 밝혔다. 또 "형제가 돌아가며 지내는 것이 형제 간의 우애에 도움이 된다면 그 방법이 최선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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