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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국회 청춘들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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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정치부 기자로 국회에 드나든 지 햇수로 5년째. 기자 경력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냈다. 가끔 택시를 타고 국회 안으로 들어갈 때면 “덕분에 국회에 처음 들어와 본다”고 말하는 기사님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낯선 장소일지도 모르는 이곳은 사실 기자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진, 정당 당직자, 국회 사무처 등 수천 명의 일상이자 삶의 터전이다.

나는 이들을 국회의 청춘이라 부르고 싶다. 20세기 초 미국 시인 새뮤얼 울먼은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했다. “단지 햇수로만 늙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상(理想)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다”면서다. 오늘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 안팎에서 이상을 품고 살아가는 이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최근 국회의원 한 명당 보좌진을 7명에서 8명까지로 늘리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됐다. 국회 인턴으로 근무하다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얻은 300명의 청춘은 국민의 혈세를 갉아먹는다는 질책을 감수해야 했다. 보좌진 한 명 늘린다고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 더 원활해지고, 이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올 거라는 신뢰는 거의 제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좌진 한 명 한 명이 열정을 가지고 일할 때 이 사회의 부조리가 하나라도 더 개선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각종 비리에 연루되는 등 불미스러운 일도 보도되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이가 훨씬 많다는 걸 경험치로 알고 있다. 질책뿐 아니라 이들의 열정을 격려할 응원도 필요하다.

보수정당이 둘로 쪼개졌다가 재결합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몇몇 청춘은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바른정당은 20석이 붕괴되면서 국고보조금이 줄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역시 인력을 감축하는 상황에서 당이 어려울 때 떠났던 ‘배신자’들을 받아 줄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한국당으로의 이직을 희망했던 13명은 바른정당에서도 대기발령을 받았다. 사실상의 해직보다 더 가혹한 건 배신자라는 낙인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에겐 치열하게 자신의 앞날을 고민했던 한 직장인으로 보인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혹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로서 불안정한 상황을 헤쳐 가려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러게 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정치판에 발을 담갔느냐’는 핀잔보다는 ‘앞으로도 원하는 일에 도전하시라’는 격려가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에게 필요한 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