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대리와 과장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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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아이돌에게는 ‘7년 차 징크스’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계약서는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의 전속계약을 최장 7년으로 제한한다. 그래서 아이돌 그룹은 대개 데뷔 5~7년 뒤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멤버의 이해관계도 다르고 인생계획도 제각각이라 모든 멤버가 재계약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명그룹 여럿이 그렇게 사라졌다.

나도 사라지는 건 아닐까 종종 걱정되는 ‘7년 차’다. 뉴스는 여전히 중요하다. 뉴스가 일으킨 공분이 정권을 바꾸기도, 없던 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아침 신문을 정독하는 독자가, 매일 저녁 TV 앞에서 1시간 동안 뉴스를 보는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기성 언론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쌓인 연차만큼 마음속 물음표도 늘어 간다.

언론뿐 아니라 건설·제조·유통업…. 사양길은 먼 얘기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있겠나. 은행에 다니는 친구들은 “이미 들어왔으니 쉽게 잘리지는 않겠지만, 여긴 점점 사람이 필요 없어진다”고 말한다. 건설사에 다니는 지인은 기본급만 받는 ‘리프레시 휴직’ 중이다. 회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는 휴직 동안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볼수록 더 불안하다.

입사 무렵 인기를 끈 드라마 ‘미생’의 김동식 대리 안부가 문득 궁금하다. 미생들 이야기는 웹툰에서 이어진다. 김 대리는 자신의 입지가 불안정한 대기업 대신 위험투성이 소기업을 택했다. 눈 빨간 ‘오 차장’이 회사를 나와 차린 작은 무역상사다. 김 대리는 ‘과장’ 직함을 다는 대신 월급은 다니던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의 절반 수준만 받게 된다. 한참 뒤 다른 에피소드에서 그는 장그래에게 “살아온 매 순간을 손익으로 정리할 수 있어? 죽을 때나 알 수 있을 거야, 내 인생의 재무제표를”이라고 말한다.

내가 입사하던 해 데뷔한 걸그룹 에이핑크는 재계약에 성공한 케이스다. 에이핑크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모두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 맞추기 힘들었지만 ‘나 믿고 한 번 더 하자’는 리더의 말에 모두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던 일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역시 강한 사람이라는 걸 7년 차에 깨닫는다. 나처럼 방황하는 ‘대리님’들에게 광고인 박웅현의 말을 옮겨 전한다. “옳은 선택은 없는 겁니다. 선택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 미생 김 대리처럼 새 길을 택하든, 있던 자리를 지키든 스스로 괜찮다면 그게 성공일지도 모른다.

이 현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