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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국가 신라 도장 '범웅관아'(梵雄官衙)'는 무슨 뜻?

중앙일보

입력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절터에서 나온 청동인장. '범웅관아지인'이 새겨져 있다. [사진 문화재청]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절터에서 나온 청동인장. '범웅관아지인'이 새겨져 있다. [사진 문화재청]

통일신라 국가 사찰에선 주요 행사 때 어떤 도장을 사용했을까. 그 자취를 보여주는 청동인장(靑銅印章) 두 점이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절터에서 나왔다. 특히 '범웅관아'(梵雄官衙)라는 명문이 처음 확인됐다.

흥전리 사지에 나온 또다른 청동인장. '만'(卍) 자처럼 획을 여러 번 구부린 추상 무늬가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흥전리 사지에 나온 또다른 청동인장. '만'(卍) 자처럼 획을 여러 번 구부린 추상 무늬가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삼척시청과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중인 흥전리 사지(寺址)에서 한 변 길이가 5.1㎝인 정사각형 청동인장 두 점을 찾아냈다고 5일 발표했다. 흥전리 절터는 9세기께 제작된 완벽한 형태의 청동정병 두 점이 지난해 발견돼 화제가 됐다.

강원도 삼척 흥전리서 청동인장 2개 발굴 #석가모니 관아, 국가가 임명한 승려 의미 #삼국사기 등 사료 기록 실물로 처음 확인

 이번 청동인장에는 구멍이 뚫린 손잡이가 달렸다. 끈을 매달아 쓸 수 있도록 했다. 도장 글자는 돋을새김했다. 그 중 한 점에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 글자가 새겨져 있다. 범웅은 '석가모니' '부처'를 뜻한다. 석가모니 관아, 즉 승관(僧官)의 도장이라는 뜻이다. 승관은 국가가 임명한 승려를 말한다. 또 다른 인장에서는 ‘만(卍)’자 형태로 연결한 문양이 확인됐다.

흥전리 절터에서 지난해 발굴한 통일신라 청동정병. 깨끗한 물을 담았던 정병은 향로·촛대 등과 함께 불단(佛壇)에 올리는 공양구로 사용됐다. [중앙포토]

흥전리 절터에서 지난해 발굴한 통일신라 청동정병. 깨끗한 물을 담았던 정병은 향로·촛대 등과 함께 불단(佛壇)에 올리는 공양구로 사용됐다. [중앙포토]

 불교문화재연구소 박찬문 팀장은 "경주 황룡사지에서도 비슷한 형태이 인장이 나온 적이 있지만 '범웅관아' 명문은 문헌·금석문을 통틀어 처음 확인된 용어”라며 “통일신라 승단 조직과 국가의 관계를 규명하는 중요한 사료"라고 설명했다.

 옛 문헌에는 국가가 도장을 제작·관리한 기록이 나온다. 『삼국사기』 권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을 보면 문무왕이 모든 관인은 국가가 주조(鑄造)하게 했으며, 『고려사』 권 6(정종 원년 10월)에도 고려 정종 때 ‘식목도감(式目都監)’에서 지방 주군(州郡)이 사용하는 승관인을 거둘 것을 요청하는 기사가 등장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간장·된장 등 사찰 음식재료를 담은 항아리를 보관하는 창고인 장고(醬庫) 터도 확인됐다.

 흥전리 절터는 신라 불교의 확산 과정을 보여준다. 남쪽 경주에서 시작된 불교문화가 태백산맥을 타고 설악산 일대까지 퍼진 것으로 보인다. 2014년부터 조사가 진행 중인 이곳 절터에선 지금까지 신라 국왕의 고문 역할을 한 승려를 지칭하는 '국통'(國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문 조각, 화려한 장식의 금동번(깃발) 등이 잇따라 발굴됐다. 흥전리 사잘은 11세기 고려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찬문 팀장은 “이 일대는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이 갈라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며 “흥전리 사찰은 통일신라 시대 영동지역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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