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새 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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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돌연한 백의종군 선언은 정가에 큰 충격을 주고 야권통합과 여야선거법 협상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총재직 사퇴가 앞으로 얼마만큼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는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야권통합과 야당의 총선 승리를 명분으로 한 그의 결단에서 일단 신선한 느낌을 받게 되고 그의 말대로 야권통합과 야당 리더십의 세대교체에 중요한 전기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실상 대통령선거 패배 후 야당이 분열상태로 다시 총선에 임할 경우 또 한번의 패배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민주·평민 당은 두 김 씨간의 관계악화로 통합과는 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민주당은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김 총재를 재 신임했고 평민 당은 재야인사를 영입,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해 각기 독자노선의 추구를 명백히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무소속의원 5, 6명 그룹을 위시해 재야에서도 여러 갈래의 신당 움직임이 표면화해 총선을 앞두고 야권은 전례 없는 분열 상을 보이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김 총재의 후퇴로 야권양상은 크게 달라지게 됐다. 민주·평민당의 통합문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재론되고 무소속그룹의 신당추진도 일단 주춤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우 통합 론은 더욱 강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가질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통합의 가장 큰 장벽으로 간주돼온 두 김씨 중 한 김씨가 사퇴한데 따라 다른 한 김씨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대중평민당총재가 꼭 김영삼씨에 상응한 처신을 해야한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양당의 다수 성원이 통합을 바랄 뿐만 아니라 통합이 야권의 새로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이는 만큼 그로서도 외면만 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따지고 보면 야당지도층의 세대교체는 역사적 추세라고도 할 수 있다. 두 김씨가 이른바 40대 기수 론을 내세워 보수야당의 세대교체를 부르짖은 후 약 20년간 야당을 이끌어왔는데 그 동안의 사회·경제·의식의 변화에 대응한 야당의 체질개선이란 측면에서 보거나, 권위주의적 정치의 시대를 보내고 새로 민주화시대를 맞는데 따른 야당재편의 필요성에서 보거나 야당리더십의 교체·개편은 불가피한 명제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패배 후 그런 요청은 더욱 절실히 대두되었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씨가 스스로의 결단이라는 방식으로 야당통합과 지도층 교체의 돌파구를 연 것은 나름대로 대국을 잘 읽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정계에서 밀려나가지 않고 스스로의 결심으로 후퇴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김 씨의 후퇴로 민주당의 지도체제에는 어느 정도의 공백이 있을는지도 모르고 당내 인맥으로 보아 실권은 상당기간 평 당원이 된 김씨가 행사할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후퇴함으로써 새 국면을 조성하고 정치의 새 기회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그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김 총재의 후퇴로 조성된 이 계기를 야권의 각 당, 각 파가 현명하게 살리기를 기대한다. 원래 대통령후보를 따로 내기 위해 나뉘어진 민주·평민당의 통합노력은 물론 양당 외의 보수적 야권세력과 점진적 개량주의 세력 등도 웬만한 은원 관계나 인과관계를 떠나 대국적으로 뭉치는 노력이 적극 전개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단일화된 보수야당과 진보적 급진 정당 등으로 오늘의 이 어지러운 정계가 질서를 찾아 구획정리가 되고, 각기 전열을 가다듬어 총선에 임하게 되기를 바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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