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새 풍속「속편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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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들어 속편(속편)출판물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속편이란 말 그대로 전편의 인기를 바탕으로 저자 및 제목의 동일성을 유지함으로써 전편의 독자들을 흡수하기 위한 일종의 「장르적 기술」.
이같은 속편현상은 영화 등 대중문화 장르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정착된 것이나 출판계에 본격 상륙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현재 서점에 나와있는 전편-속편 출판물들로는 서정윤의 시집『홀로 서기』『홀로 서기 2-점등인의 별에서』, 「알퐁스·도데」의 소설『꼬마철학자-나의 어린시절』『꾜마철학자2-파리30년』,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나의 라임오렌지나무 2-광란자』, 「스우타운센드」의 소설체 일기『비밀일기』『속비밀일기-성장의 아픔』, 김초혜의 시집『사랑굿1』『사랑굿2』등이 있다.
「헤르만·헤세」의 소설『크눌프』및 시집『방랑자 크눌프의 추억』은 소설과 시집이 전편-후편형식으로 나온 예. 또 도종환의 시집『접시꽃 당신』에 이어 이달 말에는 『접시꽃당신2』도 출간될 예정이고, 철학자 김용옥의 동양사상 입문서『여자란 무엇인가』도 『여자란 무엇인가2』로 이어질 계획이다.
이같은 속편출판물의 공통된 특성은 모두가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점이다. 시집『홀로 서기』 및 『접시꽃 당신』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종합순위1, 2위를 다투는 대형베스트셀러들이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꼬마철학자』『크눌프』『사랑굿』등 역시 전편과 속편 모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있다.
그러나 이들중 연작시『사랑굿』1백여편을 2권에 나누어 수록한『사랑굿』1, 2를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은 전편의 독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속편형식을 취했다는 인상이 짙다.
『꼬마철학자2』는 책표지에 조그맣게 붙은 부제「파리30년」이 원제인데 『꼬마철학자』가 히트하자 국내에서 붙여진 제목이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2-광란자』는 저자「바스콘셀로스」가 먼저 발표한 『광란자』(1963년)가 나중 발표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1968년)의 속편으로 둔갑한 사례.
『속비밀일기』도 표지에 조그맣게 쓰여진 「성장의 아픔」이 원제이며, 「헤세」의 시선집『방랑자 크눌프의 추억』도 소설『크눌프』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출판사가 붙인 가공의 제목일 뿐이다.
대형베스트셀러『홀로 서기』와 『홀로 서기2』도 저자가 동일하고 속편시집에 『홀로 서기2』라는 시가 수록돼있다는 사실 외에는 두 시집이 같은 제목을 써야만할 필연성은 보이지 않는다.
『홀로 서기』와는 달리 이해인 수녀의 시집『민들레의 영토』『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내혼에 불을 놓아』는 모두 비슷한 시 세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각각 다른 제목들을 쓰고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같은 점에서 볼때 속편출판은 현재 5권까지 나와 있는 조정내의 장편『태백산맥』이라든가 3권까지 나와있는 고은의 장시『만인보』, 김지하의 『대설-남』등 이른바 대하문학장르와도 구별되며, 현재 3집까지 나와있는 학술무크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든가 계간지 등과도 구별되는 새로운 출판장르로 이해되나 그 출판의도는 「책의 연속성」보다 「책의 상품성」에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같은 속편현상에 대해 종로서적 염상규씨는 『최근들어, 독자들의 책 고르기가 「작가위주」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속편출판은 「작가위주 책 고르기」를 더욱 밀고 나가 「작가 및 제목위주」책 고르기에 편승한 새로운 출판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다른 책들 사이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친근감 있게 끌어 모으는 효과도 있으나, 단순히 전편의 인기를 상품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출판자세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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