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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없는 총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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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짤막한 외신 한 토막은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요즘 장례식을 치른 장경국 대만총통은 남겨놓은 재산이 없어 그 유가족들이 생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설마 끼니를 걱정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실제로 장 총통은 재임 중에 봉급이나 수당은 몽땅 써버렸던 모양이다.
그는 1975년이래 10년이 넘게 집권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점퍼를 입고 지냈다. 시간만 나면, 아니 시간을 내서 그는 농촌이나 공장을 시찰했다. 도장 찍는 일은 모두 행정원장에게 맡겨놓고 국민들과 생활현장에서 직접 만나 얘기도 나누고 등도 두드려 주며 지냈다.
사실 장 총통은 그의 선대 장개석 총통이래 40년을 두고 장기 집권에, 야당 없는 독재를 해봤지만 국민의 원망보다 깊은 존경을 받아왔다.
총통의 유가족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나 축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선 「드골」도 비슷하다. 그는 10년에 걸쳐 화려한 대통령생활을 하고 나서도 고향 콜롱베레 되 제글리즈 마을에서 72달러 짜리 참나무 관에 누워 푸줏간 점원, 치즈 제조업자, 농장 일꾼들의 손에 의해 동네 묘지에 묻혔다. 묘비명도 간단했다.
『「샤를·드골」1890∼1970.』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은 공적인 의식도, 훈장도, 조포도 모두 없었다. 「드골」의 고향 집이라니, 단층 돌집으로 카페나 했으면 좋을 수수한 전원주택이었다. 하긴「드골」에겐 그런 생활이 더 안락했는지도 모른다.
「드골」같은 위인이 아니라도 「레이건」의 전임 「카터」가 대통령을 그만두고 고향 플레인즈에 돌아갔을 때 그를 반겨주는 것은 빚더미와 이자뿐이었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된 사람은 그 재산을 블라인드 트러스트(무기명신탁) 에 맡기는 제도가 있다. 이름을 공공연히 대놓고 신탁을 하면 특정기업에 특혜를 줄 위험이 있다고 그런 제도가 생긴 것이다. 아무튼 「카터」가 맡겨 놓았던 재산은 운영부실로 챙길 것이 없었다.
이런 얘기들이 우리 귀엔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나라에선 누가 한번 권력을 잡았다 하면 부대는 물론 대대손손 물려갈 「안락」을 긁어모으고, 그것도 모자라 형제자매, 처가권속들까지 갈고리를 들고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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