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 추위 가르며 과녁 뚫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시위를 떠난 화살이 눈꽃 만발한 소나무숲위를 넘어 한겨울추위를 가르며 난다. 화살이 작은 계곡건너편의 과녁을 묵직한 소리를 내며 힘차게 때린다. 적중(적중)의 순간은 궁도가 가지는 희열이다.
지난3일 상오7시 서울사직공원 뒤에 자리잡은 활터 황학정(황학정).
정자옆 30평 남짓한 사대(사대)에선 5명의 궁사(궁사)들이 영하 12도의 추위도 잊은채 온몸의 힘을 모아 차례로 시위를 당기고 있다.
각지를 떼는 순간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를 내며 시외를 떠난 화살이 1백45m떨어진 과녁에 명중되자 『퉁』하는 묵직한 음향이 인왕산의 푸르스름한 새벽공기를 뚫고 조용히 울려 퍼진다.
아침 활쏘기를 마친 이상원(이상원·63)사원. (사원)은 『국궁은 단전호흡으로 온몸의 기를 모아서 쓰는 전신운동』이라며 『활을 시작한 이래 여태 잔병치레 한번 한적 없다』며 국궁예찬론을 폈다.
78년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이래 장마철을 제외하곤 활쏘기를 거른 일이 없다는 이씨는 이날 3순(화살 15개)중 10시(시)를 명중시키는 실력을 과시했다.
국궁은 우리민족의 혼이 깃든 정통무예다.
일제하인 지난 l922년 창설된 대한 궁도협회는 지난83년 양궁이 메달스포츠로 각광을 받으며 독자적으로 분리해 나가면서 일시 침체기에 빠졌었다.
그러나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상체를 주로 이용하는 양궁에 비해 전신운동이 되며 정신수양에도 좋다는 것이 차츰 알려지면서 일반 여가운동으로 인기를 되찾고 있다.
국궁 동호인은 지난 86년1만3천명에서 87년엔 1만6천명으로, 등록선수는 4천5백명에서 5천4백명으로 각각 늘어났다.
일반의 인식도 높아져 87년에 국궁이 처음으로 중·고교 체육특기과목으로 지정되자 부천공고 등 고교3곳과 전남 화개중 등 2개 중학교에 국궁팀이 창설됐다.
전국의 활터는 2월 현재 서울 10곳 포함, 전국 2백10여곳을 헤아리며 활쏘기의 교육과 실제는 여기서 이뤄진다.
전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 3백64년의 활터 황학정의 권무석(권무석·46)사범은 『활은 처음 마음가짐과 기본자세부터 바로 배워야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궁은 양궁과 달리 조준기가 없고 사대와 과녁의 거리도 1·5배가 넘는 1백45m나 돼 입문초기 숙달되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권씨는 초보자의 경우 기본자세·이론·활 관리·예법 등을 1개월은 배워야 기본기술을 갖춰 비로소 사대에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문단계를 지나 꾸준히 연습하면 그 이후는 진보가 빨라, 1년만 연습하면 9순(45시) 중 25시를 맞추는 초단실력에 이를 수 있다는 것.
활과 화살은 개인의 체력과 팔 길이에 따라 강도와 길이 등을 맞추어 쓴다.
우리 전통 활은 철궁·목궁 등 종래 대부분의 명맥이 끊어지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은 물소 뿔을 재료로 한 각궁(각궁)뿐이다.
수제품인 각궁은 25만원선으로 값이 비싸나 정교한 제작방식으로 활을 쏜 뒤의 진동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유리섬유를 쓴 강화플래스틱 개량궁이 4만∼5만원대에 시판돼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화살은 대나무 화살15대(대당 3천원)가 필요하며 전통(2만원), 손가락에 끼는 각지(3천원), 활을 넣는 궁대(8천원)등 기본장비는 11만원이면 갖출수 있다.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