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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_this week]혼혈·이혼 포용한 왕실, 손톱만은 양보 못해

중앙일보

입력

지난 11월 27일 영국 해리 왕자(33)와의 약혼 사실 공표로 미국 배우 메건 마클(36)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8년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둘째 손자며느리가 될 마클은 2011년 미국 법정 드라마 ‘슈츠’에 섹시하고 능력 있는 법률 보조원으로 출연해 유명세를 얻었다. 2016년 여름 해리 왕자와의 연애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흑백 혼혈에 이혼 경력까지 있는 미국 배우와 결혼까지 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영국 왕실은 쿨하게 결혼을 승낙했고, ‘영국 왕실의 진보'란 평가까지 나왔다. 그런 달라진 모습에도 불구에도 유독 왕실이 포기하지 못하는 게 있으니, 어쩌면 하찮아 보이는 손톱이다.

11월 27일 영국 런던 켄싱턴 궁에서 약혼 사실을 발표한 해리 왕자와 피앙세 메건 마클. [AFP=연합뉴스]

11월 27일 영국 런던 켄싱턴 궁에서 약혼 사실을 발표한 해리 왕자와 피앙세 메건 마클. [AFP=연합뉴스]

영국 왕실의 누드 손톱

해리 왕자 약혼녀 메건 마클 ‘누드톤’ 네일의 비밀 #영국 왕실 여성 모두 짧은 맨 손톱 #다이애나의 빨간 손톱에도 이유가

약혼 발표 자리에서 포착된 다이아몬드 웨딩링과 누드톤 네일. 핑크빛이 도는 네일은 전형적인 영국 왕실의 스타일이다. [신화=연합뉴스]

약혼 발표 자리에서 포착된 다이아몬드 웨딩링과 누드톤 네일. 핑크빛이 도는 네일은 전형적인 영국 왕실의 스타일이다. [신화=연합뉴스]

공식 발표날 마클이 착용한 모든 게 화제였다. 눈에 띄지 않는 건 ‘손톱’뿐이었다. 아니 눈에 띄지 않아 사실은 더 눈에 띄었다.
앞서 패션 이야기부터 하자. 마클은 허리를 잘록하게 묶은 무릎길이의 흰 코트를 입고 긴 갈색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어 여성스러우면서도 절제된, 왕가의 우아한 신부를 표현했다. 지금껏 몸에 꼭 달라붙는 펜슬 스커트와 가슴이 깊게 파진 상의를 즐겨 입어 ‘할리우드 섹시스타’로 각인됐던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손톱은 더 드라마틱하다. 자란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톱을 바투 깎고 그 위에 핑크색이 감도는 연한 우윳빛의 누드톤 네일 컬러로 단정하게 마무리했다. 고(故) 다이애나비와 손윗동서 캐서린 왕세손빈에 이은 또 한 명의 ‘영국 왕실 스타일 아이콘’의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 다이아몬드 반지와 함께 등장한 누드톤 네일은 곧바로 보그, 얼루어, WWD, 리파이너리29 등 많은 패션 매체가 앞다퉈 다룰만큼 가장 트렌디한 네일 스타일이 됐다. 사실 보그는 약혼 발표 전 이미 "마클의 손톱 컬러가 왕실 규범에 맞춰 누드 톤으로 점점 연해지고 있다"며 곧 약혼 소식이 들릴 거라는 암시를 했다. 섹시한 이미지 옷을 소화하며 칠했던 짙은 색 네일에서 벗어나, 한 듯 안 한 듯한 연한 색 네일 컬러를 선택하는 게 그저 '취향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고 집어낸 것이다.

지난 9월 캐나다 토론토의 휠체어 테니스 경기에 참석한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파격적인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지만 손톱만큼은 흰색에 가까운 밝은 색 누드 컬러였다. [AFP=연합통신]

지난 9월 캐나다 토론토의 휠체어 테니스 경기에 참석한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파격적인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지만 손톱만큼은 흰색에 가까운 밝은 색 누드 컬러였다. [AFP=연합통신]

만약 누드 컬러 대신 새빨간 색을 손톱에 칠했다면, 혹은 손톱을 짧게 깎는 대신 뾰족하고 길게 길렀다면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 '품위 있는 왕실의 신부'가 아니라 화려한 할리우드 여배우로 계속 각인되었을 거다.

메건 마클이 출연한 미국 드라마 '슈츠'. 이 드라마에서 마클은 섹시하고 똑똑한 법무보조인으로 나온다. [사진 넷플릭스 홈페이지]

메건 마클이 출연한 미국 드라마 '슈츠'. 이 드라마에서 마클은 섹시하고 똑똑한 법무보조인으로 나온다. [사진 넷플릭스 홈페이지]

손톱을 보면 스타일이 보인다

손톱은 우리 신체에서 아주 작지만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부위다. 김태희·김선아 등 여배우들의 네일을 담당해온 김수정 트렌드앤 원장은 “손톱을 바짝 깎고 혈색이 살짝 도는 느낌이 나는 누디 핑크 계열 컬러를 선택하는 사람은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을 원하는 여성”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부들이 좋아해 ‘웨딩 네일’이라고도 불린다.

끝이 뾰족한 오발 네일로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멜라니아 트럼프. [UPI=연합뉴스]

끝이 뾰족한 오발 네일로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멜라니아 트럼프. [UPI=연합뉴스]

반대로 화려한 걸 좋아하거나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튀고 싶어하는 사람은 손톱을 길게 기르거나 장식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한다. 손톱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풍기는 대표적인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다. 그는 항상 손톱을 길게 길러 뾰족하게 만든 ‘오발 네일’을 한다. 뾰족하게 기른 손톱에 옷과 어울리는 연한 색을 칠하는데, 빨강 핑크 등 짙은 색을 칠하지 않아도 이미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하다.

왕실 공식 석상에서 손톱에 아무 것도 칠하지 않았던 고 다이애나 비. [사진 핀터레스트]

왕실 공식 석상에서 손톱에 아무 것도 칠하지 않았던 고 다이애나 비. [사진 핀터레스트]

이혼 후 다이애나 비는 빨간색 네일을 종종 바르고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사진 핀터레스트]

이혼 후 다이애나 비는 빨간색 네일을 종종 바르고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사진 핀터레스트]

다시 영국 왕실 세계로 돌아가보자. 패션 매체들이 메건의 누드톤 네일을 '왕실'과 연결짓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대를 거슬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식 석상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맨손톱만을 보여 왔다. 몇 해 전 영국 네일 컬러 브랜드 ‘에시’가 홈페이지에 '여왕이 30년 넘게 에시의 발레 슬리퍼 컬러(연한 핑크 빛이 도는 살구색)를 사용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 인터넷에 퍼져 나간 적은 있지만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공식 석상에 나타난 사진 속 모습으로 봤을 땐 기본 정리만을 깨끗하게 하거나 네일 컬러를 바르더라도 속살이 비칠만큼 살색을 살짝 바르는 게 전부다.

캐서린 영국 왕세손빈 역시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손톱만큼은 늘 단정하게 정돈만 한다, 색감있는 네일은 바르지 않는다. [AP=연합뉴스]

캐서린 영국 왕세손빈 역시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손톱만큼은 늘 단정하게 정돈만 한다, 색감있는 네일은 바르지 않는다. [AP=연합뉴스]

네일 컬러를 바르지 않는 건 다이애나비와 캐서린 왕세손빈에게까지 이어졌다. 다이애나비의 과거 사진을 보면 찰스 왕세자와 별거하기 전까지는 캐주얼한 팬츠에서부터 이브닝 드레스 차림까지 맨 손톱을 보이다가 90년대 초반 별거 후에는 억눌렸던 것들을 분출이나 하듯이 종종 빨간 네일 컬러를 바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캐서린 왕세손빈 역시 화려한 비즈가 가득 놓인 드레스 차림에도 손톱만은 맨손톱으로 그대로 놔둔다. 권호진 네일 아티스트는 “여성스러움을 부각시키면서도 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선택하는 네일”이라며 “반대로 개인의 취향과 상관없이 직업이나 지위상 단정함을 강요받는 사람들이 선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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