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문고리 당긴 한은…가계빚 잡으러 6년5개월만에 금리 올렸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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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30일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11년 6월 이후 6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금통위, 기준금리 1.5%로 올려] #성장률 3%, 수출 호조속 경기 개선 #소비심리와 기업 체감 경기 호조로 # #금리 인상으로 커질 가계빚 부담 우려 #오르지 않는 물가ㆍ원화 강세도 장애물 #금리 인상 반대하는 소수의견 등장에 #향후 긴축 속도는 다소 늦어질 듯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6월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예고한 뒤 5개월 만에 기준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6월 금리 인하 이후 17개월간 이어진 초저금리(연 1.25%)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긴축의 문고리를 당긴 한국은행이 염두에 둔 건 금융 시장 안정이다. 이날 발표된 통화정책방향에서 “가계대출의 증가세는 다소 둔화하고 있으나 예년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 가계 빚 급증에 따른 금융 불안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올해 3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1419조원을 넘어섰다. 시중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이 몰려들며 부동산 시장도 과열됐다.

 달아오른 시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정부는 부동산과 가계 부채 대책 등 미시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3분기에만 가계 빚이 28조원 늘어나는 등 효과는 미진했다. 결국 한은이 무딘 칼인 통화 정책을 빼 들었다.

 금리 인상은 시장에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시 정책 수단이다. 경제의 여러 요건이 맞아 떨어져야 구사할 수 있다.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부작용이 크다. 그런 까닭에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은 ‘거함(巨艦)’에 비유된다. 큰 배는 방향을 빨리 바꾸지 못한다. 가속과 감속도 늦다. 안전을 위해 천천히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금리 인상까지 6년 5개월이란 긴 시간이 걸린 이유다.

 한은이 거함의 기수를 돌린 건 한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돼서다.

 이날 발표된 통화정책방향에서 한은은 “수출이 높은 증가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소비가 완만하게 개선되고 투자도 양호한 흐름을 보이며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로 예상했다. 상향 조정의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쳤다. 통화정책방향에서 한은은 “국내 경제 성장 흐름은 지난 10월 전망경로를 소폭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장밋빛 전망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2%로 예상했다.

 한국 경제의 엔진인 수출도 순항 중이다. 1~3분기 누적수출액(4302억 달러)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5% 증가했다. 1~3분기 누계 기준으로 역대 최대 금액이다.

 움츠러들었던 소비 심리와 기업 체감 경기도 나아지는 모습이다.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6년 11개월 만에 최대치(112.3)를 기록했다.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제조업과 비제조업 모두 동반 상승했다. 기업 실적 개선의 영향으로 코스피와 코스닥도 올해 20% 넘게 상승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

 긴축으로 방향은 틀었지만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다. 가계 대출의 질이 나쁘지만은 않다. 1분기 현재 가계 대출의 54.4%는 소득 수준 상위 1~3등급이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준금리가 오르면 빚이 많은 개인과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한은이 7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이자 부담은 2조3000억원 늘어난다.

 빚 부담이 커지면 그만큼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이 그나마 살아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향후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 장애물도 여럿이다. 경기 회복에도 물가는 충분한 수준까지 오르지 않았다.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화 강세도 경제에는 부담이다. 반도체가 이끄는 수출 호조에 외국인 투자금이 유입되면서 상승 압력은 커지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북한 리스크도 29일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다시 부각되면서 금융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제 관심은 향후 금리 인상의 폭과 속도다.

 일단 금리 인상 속도는 다소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둘기파(통화 완화)로 분류되는 조동철 금통위원이 금리 동결을 주장하는 소수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방향에서도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이라며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상황과 가계 빚 부담을 감안하면 당분간 숨고르기를 할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전문가는 내년에 한은이 금리를 1~2회 추가 인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상의 폭과 속도를 결정할 요인은 국내 경기 상황과 부동산 시장 동향, 미국의 금리 인상 횟수 등으로 예상된다. 북한 리스크도 금리 인상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이를 뒷받침하듯 통화정책방향에서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 주요국과의 교역 여건, 가계부채 증가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내년이 금리를 1회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미국이 기준 금리를 더 빠르게 올리거나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고 유가가 오르면 추가 1회 인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 당국이 움직일 여지가 충분하다는 시각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금리를 두 차례 올려도 여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이번 금리 인상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향후 외국인 투자자의 반응이나 시장의 변동성 등에 따라 기준 금리 인상의 속도를 늦추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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