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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핵심 인사가 박원순 만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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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

박원순 서울시장이 두 달 전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김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런 그가 박 시장의 경남지사 출마를 언급했다. 논리는 이랬다. “박 시장이 영남(경남 창녕) 사람인지 모른다. 지역 기반을 가지셔야 한다”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려면 당을 위한 희생도 필요하다”는 거였다. 결국 박 시장이 대선주자로 크기 위한 희생과 도전·확장을 강조한 것이다. 박 시장이 당황스러워했을 법하다. 서울시장을 하던 이에게 경남지사라니. 아니나 다를까, 박 시장은 거절했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 향해 판짜기 분주한 여권 #판 짤 인물조차 안 보이는 야당, 이대로 되겠나

그의 경남지사 출마가 이뤄져 성공한다면 친문계는 박원순이란 ‘대선 상품’과 함께 서울시장이란 매력적인 선택지를 손에 쥘 수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정치공학적 발상이다. 실제 여권 내엔 민주당 간판을 단 세 차례 시장 도전에 대해 냉담한 기류도 없지 않다. 아무튼 그 만남 이후 박원순의 경남지사 출마설은 널리 퍼졌다. 급기야 지난 15일 언론사 사회부장단 간담회에서 “경남지사 출마 생각이 전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박 시장은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차출설이 여권에서 나오고, 그 중심에 친문계가 있다는 점이다.

차출설을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의 하방(下放)에 비유하는 말까지 나온다. 친노가 폐족의 위기에서 벗어난 계기가 안희정이 충남으로, 이광재가 강원으로 가 도지사에 당선되면서였다. 박 시장의 경남지사 출마가 미래를 기약하는 ‘신(新)하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은 차출설에 휩쓸리지 않을 태세다. 다만 압박의 무게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권의 판짜기가 점입가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는 심산 같다. 정부의 개혁 작업도 선거 결과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어 더 그런 모양이다. 여당은 자유한국당의 근거지였던 부·울·경(부산·울산·경남)까지 접수하려는 기세다.

정무수석 인선 과정에선 여권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청와대는 유력한 후보였던 강기정 민주당 전 의원(3선)의 광주시장 출마 의사를 받아들여 50세의 초선 ‘경량급’ 한병도 정무수석을 선택했다. 차선이었던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발탁도 그의 충남지사 출마 때문에 접었다. 지방선거 승리는 청와대 선임(先任) 수석 인선보다 우선순위인 게 분명한 셈이다. 박 대변인은 양승조(충남 천안병) 의원과 충남지사 후보 자리를 놓고 다툴 거라고 한다.

지방선거 ‘올인’의 전주곡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먼저 울렸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전남지사 출마 의사를 밝힌 뒤부터 여권에서 “임 실장을 대항마로 내보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임 실장은 “전남지사 출마 안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자 이번엔 서울시장 차출설이 다시 불거졌다. 추미애 대표와 박영선·우상호·이인영 의원 등이 후보로 거론되지만 문 대통령과 거리가 있다는 점 때문에 다시 임 실장을 내세우자는 주장이 친문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것이다.

여권의 움직임이 이러한데 야당은 어떤가. 한국당은 홍준표계와 친박계가 전쟁 중이다. 지방선거를 생각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겨우 나오는 얘기가 승리를 자신하는 경북지사 후보로 이철우·김광림 의원이 경합할 거란 정도다. 국민의당도 비슷하다.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으로 호남 중진들과 갈등하면서 지방선거 걱정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야당의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선거는 인물로 치른다. 여당에선 서로 하겠다는 이들이 줄을 서는데 야당에선 좀체 장이 서지 않고 있다. 야당이 너무 낮아지면 우리 정치가 불행해질 수 있다. 여당을 제대로 견제할 세력이 없어져서다. 힘이 한 곳으로만 쏠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정치판 아닌가. 야당이 제대로 정신 차리라고 하는 말이다.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