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싸움 협상여지 남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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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이 끝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제소절차를 밟기 시작함으로써 한국과 미국간의 쇠고기싸움이 장소를 바꿔 이번 주 또는 내주 중 제네바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미국이 가트에 한국을 제소하기 위한 전 단계로 가트규약 22, 23조에 따라 지난달 25일 주 제네바 미국대표부가 한국대표부에 쌍무 협의를 요청,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가트규정 22, 23조는 무역 분쟁 발생 시 피해 국이 가트에 이를 제소하기 전 당사국간에 먼저 협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측의 협의 요청에 관련 국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응해야 한다.
따라서 아직은 국제법상 미국이 한국을 가트에 제소한 것은 아니다. 쌍무 협의를 통해 이견이 조정되면 가트제소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다.
협의에서 합의가 안될 경우 미국은 사무총장에게 중재를 요청 할 수 있고, 사무총장은 이 같은 요청이 오면 가트 이사회에 회부하는 한편 조사위원회 (패널)를 설치하게 된다.
이 조사위원회는 사무총장이 임명한 중립적인 3∼5명의 패널리스트로 구성된다.
조사위원회는 한미간의 쇠고기 수입개방문제를 둘러싼 분쟁을 조사한 후 평가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에 제출한다. 보고서작성에는 통상 3∼9개월이 걸린다.
조사 위 보고서가『한국의 쇠고기수입규제는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경우 이사회는『수입규제조치를 철회하거나 보상하라』는 권고를 하게된다.
한국이 이를 받아들이면 문제가 끝난다. 그러나 이를 거부할 경우 미국은 가트에 적절한 보복조치를 요청하게 되고 가트 이사회는 이를 승인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미국뿐만 아니라 가트 가입 국 모두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가트에 제소된 무역분쟁은 모두 19건인데 해결까지 걸린 시간은 최단 4개월(1건) 에서 최장 8년 4개월(4건)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이사회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피 제소 국이 문제를 끌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
물론 이기간 중이라도 피 제소 국이 제소 국과 협의, 합의를 하면 분쟁은 가트의 손을 떠나게 된다.
한미간의 이견은 상등 육 개념과 수입 범위 등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한국은 상등 육을 안심·등심·채끝·갈비심 등 주요부위로 해석하는 반면 미국은 부위와 관계없이 비타민 등 영양제를 혼합한 배합사료로 사육한 고급쇠고기로 규정하고 있다.
수입대상에 대해서 한국은 관광호텔 및 관광객을 위한 고급음식점 등 2백 19개소에 한정해서 수입시기도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상등 육을 모든 음식점에서 팔 수 있도록 완전문호를 개방하라는 주장이다.
또 현행 관세율도 20%에서 15%로 내리고 5월1일 이전에 완전수입 자유화하라는 요구다.
미국이 정식으로 가트에 제소, 가트가 보복결정을 내리거나 미 정부가 301조를 정식으로 발동하면 우리에게는 큰 타격이지만 미국 측 에 대해서도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다고 봐야한다.
가트규정에는 쇠고기로만 분류돼 있을 뿐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상등 육이라는 개념이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이 가트권고를 받아들여 수입자유화를 단행할 경우 쇠고기를 수입자유화 한다는 것이지 상등 육만 수입자유화 할 수가 없다.
일반 쇠고기는 호주·뉴질랜드산이 훨씬 싸다. 따라서 미국입장에서 보면 잘못하면 애써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또 쇠고기수입이 완전 개방되면 국내 축산기반이 완전히 무너져 년 4억7천만달러에 이르는 대미 사료수입도 끊어질 판이다.
301조 발동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여러 가지 이유로 사료·곡물 등을 미국에서 구입, 세계4위의 대미곡물 수입 국인데 수입선 다변화로 나갈 경우 미국은 아르헨티나·호주 등에 시장을 뺏길 수밖에 없다.
한미간 쇠고기싸움은 이렇듯 간단치 않게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서로 「밀어붙이기」식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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