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복지지출 계속 늘리려면 세금도 올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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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복지지출 등을 계속 확대해 국가부채를 최대한도로 늘리게 되면 노동 관련 제세부담금이 소득의 50%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경고가 나왔다. 이 경우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20% 이상 감소해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됐다.

한국 재정여력 OECD 평균 웃돌지만 #국가부채 늘면 근소세 등 인상 압박 #소비·투자·총생산 20% 감소 우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태석·허진욱 연구위원은 27일 발표한 ‘재정 여력에 대한 평가와 국가부채 관리 노력 점검’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한국은 국제적인 ‘재정 우등생’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국제 비교를 위해 사용되는 일반정부부채(D2) 비율 기준으로 2015년 현재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3.2%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부채 비율 111.2%에 비해 확연히 낮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한국의 재정 여력을 각각 GDP의 203%와 241%로 추계하면서 한국을 노르웨이, 호주 등과 함께 재정이 양호한 국가로 분류했다. 재정 여력은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국가부채의 상한선에서 현재의 국가부채를 뺀 것이다. IMF나 OECD 등이 입버릇처럼 “한국은 재정 여력이 양호하기 때문에 내수활성화와 성장률 제고 등을 위해 재정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고서 역시 한국의 재정 여력을 225%로 높게 산정했다. 하지만 양호한 재정 상황만 믿고 지출을 과도하게 늘릴 경우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보고서는 특히 재정 여력을 모두 소진할 경우, 다시 말해 국가 부채가 현재 GDP 대비 225%로 늘어날 경우에는 노동 관련 제세부담금 비율이 지금보다 25%포인트나 더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노동 관련 제세부담금에는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 각종 사회보장 부담금이 모두 포함된다.

이태석 연구위원은 “노동 관련 제세부담금은 현재 소득의 25% 수준인데 25%포인트가 더 높아지면 소득의 50%가 된다”며 “소득의 절반을 세금 등 제세부담금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제세부담금이 높아지면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고서는 이 경우 총생산과 소비, 투자가 모두 2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총생산은 제세부담금 인상 1년 뒤 22.6%, 장기적으로 29.6%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소비와 투자는 인상 1년 뒤 각각 19.9%와 25%, 장기적으로는 모두 23.2%씩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고령화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복지지출 등의 의무지출이 증가하면 재정 여력이 GDP의 40~180%로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경제성장률이 2%포인트 하락하면 재정 여력은 GDP의 179%로, GDP 대비 복지지출 등 이전지출의 비중이 현재의 1.5배로 높아지면 재정 여력은 GDP의 60%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성장률 하락과 이전지출 비중의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재정 여력은 GDP의 40%까지 감소하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연구위원은 “복지지출 등 의무지출의 증가와 같은 요소들은 미래의 재정 여력을 축소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국가부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추가적인 재정지출 수요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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