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으로 떠돌다 「제갈길」갈듯|야권통합 과연 이루어질 것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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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선을 앞두고 좌절과 혼미속에서 헤매고 있는 야권 내부가 통합바람으로 어수선하다.
26일 평민당의 집단탈당을 계기로 한차례 바람이 불듯했으나 선거법협상 전망이 불투명하고 재야가 갈가리 찢겨 신통한 대안을 내놓지못하는 현실앞에 통합 노력은 오히려 사그라지는 느낌.
앞으로 선거구 협상 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격랑이 일 가능성은 있으나 촉박한 선거일정 때문에 야권통합은 「명분」으로만 떠돌 공산이 커졌다.
○…민주당의 김영삼총재측과 5인 서명파 의원측의 야권통합전략은 상당히 집요하면서도 나름대로 각각 한계가 있다는게 지배적 관측이다.
김총재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제1야당이 돼야만 재기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는 기본구도에서 가능한한 많이 「긁어모으는」 민주당중심 통합작전을 추진해 왔다.
비호남출신 평민당의원들과 오래 전부터 접촉, 민주당 입당설득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신진세력의 영입에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내 많은 의원들 사이에서는 야권통합을 위해서나, 김총재 자신을 위해서나 『김총재가 2선으로 물러나는게 바람직한 길이 아니냐』는 논리가 증폭되어온 것도 사실. 김총재가 선거구를 1구2인제로 바꾼 것도 당내 불만 진정 및 이탈방지용의 냄새가 짙었다.
민정당측에서 소선거구제 추진 얘기가 흘러나오는데다 납득할 수 없는 부총재 영입이 이루어지자 당내 불만의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돌고 이와함께 거취문제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얘기가 오가게된 실정.
27일 발생했던 일부의원 탈당세은 물론 외부의 「계략」이 숨어있긴 했지만 민주당의 복잠한 당내사정이 외부로 드러난 계기는 된셈.
어쨌든 당내에서 중진인 K·L의원을 포함한 10여명의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불만을 토로하면서 새로운 당운영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야권통합에 동조적인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구제가 확정되지 않은데다 결국 총선전에는 이런 상황으로 갈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같은게 작용하고 있어 당내 파문은 진정되는 국면. 다만 당내동요를 막고 야권통합노력의 명분을 장악하기 위해 모종의 구상이 나올 것이라는 추측은 있다.
○…평민당측 5명의 탈당으로 아연 활기를 떠고 있는 박찬종·홍사덕·이철의원등 야권통합추진회측은 이번에 무언가「도약의 발판」을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이들은 양당에서 2O명 정도의원을 빼내오면 두김씨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대체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아래 여러 차원에서 뛰어왔다. 5명의의원들이 양당을 각각 맡아 의원들을 빼돌리기 위해 접촉을 벌였다.
그러나 △5인의원간에도 신당 추진방향에 관해 의견이 엇갈리고 △민주· 평민당의원사이에서는 이들의 배후를 「야릇한 각도」에서 보는 경향이 있어 상황이 여의치않은 실정. 이들은 평민당 탈당파중 유제연·김현수·김성식의원이 민주당 입당의사를 밝혔다는게 전해지자 그들이 입당해버리면 통합노력이 수포가 된다는 생각에서 민주당의원 탈당세을 퍼뜨리는등 이를 흔들어보려는 전략 (?)을 구사했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야권통합추진회측은 평민당 탈당자들의 민주당 합류를 계속 저지하면서 흔들기 작전으로 양당을 계속 공략할 작정이지만 이들은 야권통합이라는 명분을 현실화시키는 접착력에서 여러가지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어 이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어려운 실정.
만약 민주·평민 양당의 통합 노력을 먼저 벌인후 재야와 함께 신당을 만든다는 이들의 선통합 후신당 방안이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 선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재야세력의 주장에 끌려가고말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민정당이 어떤 정국운영 구도를 갖고 어떤 선거구제도를 택하느냐에 따라 다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은 뻔하다.
평민당의 호남출신의원들도 최근 만나 야권통합에 공감을 표시하는등 아직 내연이 계속되고 있고 민주당의원들도 자기선거구가 소선거구라도 되어 부락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 무슨 행동을 취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선거법협상이 타결되고 공천·지구당개편대회등을 고려하면 시간적으로 통합노력이 전개되기는 불가능해지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
민정당이 소선거구제를 강행한다하더라도 야권에 통합의 시간을 주지않을 시점을 택할 가능성도 높다. 더우기 통합의 결정적 요인이 되고있는게 양김의 후퇴인데 두김씨 모두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렇게 볼때 통합노력은 야권세력간의 명분 축적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이 짙고 결국 선거때까지는「제갈길 가는」꼴이 될것이라는 관측이다.
연합공천· 야권의 단일전선 구축등 실리적으로 야권에 유리한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소리도 소리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야권통합의 전망이 어둡다면 야권 통합노력은 새로운 신당만 만드는 꼴이 되어「통합」 아닌 「분열」만 조장할 우려도 없지 않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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