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란 핵 제재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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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위기감을 느낀 일본 정부는 이란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나섰다. 마누셰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을 27일 일본으로 초청해 핵개발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타진하고, 가능한 한 핵개발 자제를 설득한다는 복안이다.

◆ 일본의 속앓이=국제원자력기구(IAEA)는 4일 특별이사회에서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키로 결의했다. 일단 3월 6일까지 한 달간 유예기간은 주기로 했다. 안보리에 회부되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본도 이란의 안보리 회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원자폭탄을 맞은 유일한 나라로 핵확산 반대를 국시로 삼아온 일본으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일본이 미국 등 다른 서방국가처럼 이란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국제 안보의 명분보다 에너지 확보라는 경제적 실리가 훨씬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급률이 4%에 불과한 일본은 원유 수입량의 15.9%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협상 끝에 2004년 이란 남서부의 아자데간 유전에 대한 개발권을 따냈다. 매장량 260억 배럴로 추정되는 이 유전은 일본의 고쿠사이 석유개발이 75%의 지분을 갖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연내 주변 지역의 지뢰 철거를 끝내고 채굴작업에 들어가 2008년부터 하루 25만 배럴씩 생산하게 된다.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미국은 2년 전 일본의 유전 개발권 확보 협상을 강하게 반대했으나 일본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중국.러시아 등 신흥 에너지 소비대국의 부상에 맞서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일본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이를 묵인하기 시작한 것은 이라크 전후 복구에 자위대를 파견한다고 일본이 발 빠르게 나선 뒤부터"라고 말했다.

◆ 외교력 집중=이런 상황이다 보니 일본의 대이란 정책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란을 너무 몰아세우면 유전개발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정부 관계자)는 계산 때문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1월 21일 "이란은 성실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국제사회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활동 재개를 발표하고 열흘 이상이 지난 뒤였다.

이란 정부는 "우라늄 농축은 연구용일 뿐"이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 나라의 권리"란 종전 입장에서 양보할 기색이 없다.

이런 가운데 이란의 석유자원 확보에서 경쟁관계인 중국과 러시아가 직접 이란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우라늄 농축을 러시아 영내에서 대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국도 외교부 뤄궈쩡 부부장이 테헤란을 방문해 협상을 벌였다.

일본도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달 18일에는 아소 다로 외상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에 나서는 등 공식 발언은 자제하고 있지만 물밑 접촉은 계속했다.

5년 동안 주일대사를 경험한 모타키 장관은 27일부터 2박3일간 도쿄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하고 일본 재계 관계자들도 만날 예정이다. 이란도 일본을 손쉽게 무시할 순 없다. 일본이 자국 석유의 최대 고객이기 때문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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